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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Nov 06. 2022

예민함이 낫다

안일함보다는 

며칠 전 관리 소장님 전화를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가 우리 층 비상구 계단에 배변을 하고 있다는 사실, 더구나 우리 층과 아래층들을 오가며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외출할 때마다 주시를 해달라는 말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관리사무실은 자신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제대로 숙지는 하고 있는 것일까? 통화 당시에는 머리가 멍 해져서 제대로 따져 묻지 못했다. 생각을 정리할수록 황당하다. 


아파트 저층 비상구 계단에 누군가 배변을 한다며 엘리베이터에 주의 안내문을 본 것이 몇 달 전이다. 한동안 안내문이 보이지 않아서 사건이 종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동안 지속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저층에서 하던 괴기한 행동을 몇십 층 높은 고층까지 옮겨와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내용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안내 방송을 하면서, 이런 기괴한 사안에 대해서는 왜 방송 한 번을 안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몇 달 동안 해결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모두가 알아야 할 중대한 사안 아닌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제쳐 두고라도, 현관 열고 나가면 한 발짝거리인 비상구 계단에 누군가 계속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안내문에 강력하게 명시해 주세요!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고! 1층 비상구와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중간 문도 잠금 설정해서 외부인이 함부로 드나들지 않도록 통제해 주세요. " 

요청드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럴 일까지는 아니라고 한다. 거주민이 분명하고, 인지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한 노인일 거라고 단정 지어 말한다. 입주민이라면 더 이상하고 기괴한 일 아닌가. 자기 집을 두고 비상구 계단을 무려 30층이 넘는 고층까지 와서 매번 볼일을 보고 가는 일이 그럴 일이 아니라고? 이게 재활용 분리수거 잘못한 일들처럼 단순 안내문을 붙이고 말 일인가. 


"우리 동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만약 성도착증 환자나 정신이상자면 어쩌실 거예요? 우리 집에도 딸이 있고, 위아래 층으로 20대 딸들이 몇 명인지 아세요? 사고 나면 책임지실 겁니까?" 

책임질 거냐는 말에는 묵묵부답, 아무 말이 없고, 분명 거주민일 거라고, 며칠 지켜보자고 하더니 퇴근길에 보니 무슨 돌 같은 것으로 비상구 계단 문을 고정시켜 두었다. 화가 나서 내가 써 붙였던 경고문을 반대편에 옮겨 붙여놓고 끝이다. 이건 공론화해서 해결을 해야 할 일이라고 동대표 연락처를 달라고 해도 무슨 이유인지 주지 않는다.


1층 현관 통제도 안 해준다. 비상구 계단에 cctv 설치도 못한다. 범인을 잡지도 못한다면서 동대표와 얘기해서 방법을 찾겠다는 것도 막는다. 불안함은 가중되고, 안일하고 무성의한 대처에 화도 나고,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cctv라도 달아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답답해서 자비로 설치한 세대도 있다고 한다. 매달 아파트 관리비의 절반 이상을 관리와 시설 유지 비용으로 지불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니 어이가 없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불안하고,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마다 불안하고, 며칠 째 잠도 못 자고 소화도 안된다. 끙끙 앓고 있으니 동생이 다 필요 없고 112에 신고하란다. 일단 신고 접수되면 출동을 하든 전화가 오든 무슨 액션이든 취해야 하니 신고가 답이라고. 

아파트 내부 일이라고 접수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민 끝에 신고를 했다. 전화로 신고하면 빠뜨리는 내용이 있을까 봐 112 앱을 깔고 문자신고에 들어가니 , 그냥 문자로 신고하는 것보다 긴 내용을 입력할 수가 있다. 동영상이나 사진 첨부도 된다. 


접수문자를 받고 한 시간이 되지 않아서 출동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마침 cctv가 설치된 세대의 주민을 만날 수 있어서 영상과 진술을 확보했다고, 내 추가 진술을 들으시고, 현장도 다 보았다고 하셨다. 경범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니 형사 사건으로 접수된다고 한다. 예상보다 빨리 진행이 되어서 감사했고, 범인을 잡기 전이지만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내가 예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일상생활을 위협할 만큼의 공포와 불안감을 준다는 것 외에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할까 싶다. 나에게 예민하다는 식으로 말하던 사람들, 책임질 수 있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이었다. 안전에 대해서는 좀 예민해도 되지 않을까, 사고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 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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