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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Nov 04. 2021

글을 잘 쓰고 싶어서

필사 1권을 마쳤다

필사에 대한 글을 많이 읽어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지 와닿지가 않아서... 는 거짓말이다. 반은 귀찮음, 반은 나태함 때문에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브런치에 글을 하나, 둘 올릴수록 욕심이 생겼다.

언감생심 브런치 북 대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나도 모르게 댓글이 쓰고 싶고,  몇 줄 읽지도 않았는데 이미 라잇 킷을 누르고 싶은 글을 만나면 부러움과 질투로 마음이 출렁거렸다.

그래서 시작해봤다. 필사라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하면 좋다니까 해보지 뭐.


워드로 해도 되잖아,
굳이 손으로 써야 돼?


손이 아파서 워드로 썼더니, 이번엔 손가락이 아프다.

집중력도 손글씨를 쓸 때보다 확연히 떨어진다.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는 밥을 한 알 한 알 꼭꼭 씹어먹는 느낌이었는데, 워드로 치니 속도는 빨라도 그냥 꿀떡 한 입에 삼키는 느낌이다.

밥도 천천히 꼭꼭 씹다 보면 평소에 느끼지 못한 맛이 느껴진다. 탄수화물의 고소한 맛도 나고 포도당의 달큼한 맛도 난다. 밥의 질감에 따라서 쫀득하기도 하고 퍽퍽하기도 한 식감도 느껴진다.


아직 초초보자라 잘은 모르지만 필사도 비슷한 것 같다.

전문적인 지식도 경험도 없어서 내 맘대로 막 시작했지만,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 가면서 자음 모음 문장부호까지 세심하게 들어오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손이 너무 아프다.
하지 말까?


몇 페이지 적다 말고 꾀가 난다. 안 쓰던 손글씨를 쓰니 손이 너무 아프다. 글씨도 예쁘지가 않다. 기왕 적는 거 예쁘게 적어두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데.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려도 천천히 쓰기로 했다. 글씨가 좀 예뻐졌다.

글씨의 모양이 조금씩 잡히니 계속 예쁘게 쓰고 싶다. 필사를 하는 것인지 글씨교정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같은 글귀인데 내가 적어놓은 글이 더 잘 읽힌다.

웃긴 비유이긴 하지만, 음식점에서 사 먹던 밥을 집에 와서 뚝딱뚝딱 비슷하게 흉내 내니, 비슷한 맛이 나서 뿌듯한 기분이랄까? 물론 똑같은 맛을 느끼려면 다시 가서 사 먹어야 하겠지만.


좋은 문장만 골라 적으면 안 될까?
꼭 다 적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서 좋은 문장들만, 맘에 드는 표현들만 골라 적었다. 적을 땐 좋았다. 이런 표현은 대체 어떻게 하면 생각나는 거지? 역시 다르구나 혼자 감탄도 하면서.


그런데 다 적어놓고 나니 뚝뚝 끊어진다. 앞뒤 글이 없으니 문맥 파악이 정확히 되지 않는다. 덩그러니 혼자 있으니 책을 읽다가 느낀 감흥만큼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결국 책을 다시 찾아 펼쳤다. 결국 다 적기로 했다.


첫 필사를 해 본 후
드는 생각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님의 말씀은 그냥 좋았다.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표현할까, 어떻게 하면 더 공감되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담아 썼다는 느낌뿐이었다.

긴 세월 비바람과 햇볕을 견뎌낸 멋진 소나무처럼 , 주름이 있어도 아름다운 배우의 미소처럼, 긴 시간 말없이 철썩대는 푸르고 깊은 파도처럼, 단단하고 멋있어 보였다.


필사를 하다 보니 책을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을 옆에서 듣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어떤 표정이셨을까 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점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어느덧 두 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하시지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시지 감탄하던 처음의 마음은 사라지고, 귀한 말씀을 남겨 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법정.최인호 지음) 중에서


한 권의 필사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을 보면, 필사가 도움이 된다는 말에는 확실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뭐든 느린 나는 적어도 100권쯤은 해봐야 희미하게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이제 한 권 했으니 99권 남은 건가?

만약 99권을 해 낸다면 계속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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