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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Nov 06. 2021

아빠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마음

술을 좋아하셔서 퇴근길마다 약주 한 잔을 하시는 줄 알았다.

오늘은 안 드시겠다고 약속한 날도

직장 동료 아저씨들과 한두 잔을 꼭 하고 오셨다.


"약속했잖아요."

약속을 안 지켰다고 뾰로통해서 째려보는 나에게 아빠는

" 아빠 안 마셨어. 진짜야~."

" 칫, 거짓말!! 술 냄새나는데요? 후~ 해보세요."

" 후~~. 봐!! 안 나지? ㅎㅎ "

" 술냄새 나요ㅠㅠ 내일은 진짜 약속 지켜요? 약속~?"

" 알았어, 내일은 약속~"

딸내미 말이라면 일순위로 들어주시던 아빠셨지만,

한 잔 안 하겠다는 약속만큼은 지키지 못하셨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장손으로 태어났던 아빠.

서슬 시퍼런 시부모님 성화에 아들을 낳으시려고 할머니는 한 겨울에 얼음물에 들어가 계시기까지 했다고 한다.(지금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뭐 그때는 그랬다니까...)

할머니는 아들을 낳기 위해 위로 딸을 다섯 낳으셨고, 한 분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아빠 아래로도 삼촌 두 분과 고모 한 분이 더 계신다. 자기 밥 숟가락 가지고 태어나는 건 그저 옛말일 뿐이고, 그런 밥숟가락은 금수저쯤 돼야 가능한 일 아닐까? 없는 살림에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는 더 힘드셨을 나이 드신 부모님. 생계를 책임지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혼자 자식들을 키우기는 더 힘드셨다.


먹는 것도 배우는 것도 풍족하기 힘들었던 가정 형편에 아빠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진학을 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회사에 금형 기술직으로 들어가셨고, 어찌어찌하다 직업 훈련원의 선생님이 되셨다. 직업 훈련원은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서 대학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술 교육과 취업을 연계시켜 주는 교육 기관이다.( 지금은 폴리텍이라는 기능 대학으로 바뀌었다)


대학 진학만 할 수 있었어도 선생님이 참 천직이었을 아빠셨는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집안 형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그릴 수조차 없었던 아빠가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없는 살림이 갑자기 일어날 리도 없고, 결혼을 하셔도 집을 얻기는 힘드셨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아빠 직장에서 제공하는 17평의 사택에서 살았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그래도 내 기억엔 그 시절이 행복하게 남아 있다.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 직장 동료시니 함께 버스를 빌려서 놀러 가기도 하고, 아파트 마당에서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던 기억이 난다.

작고 허름한 아파트지만, 아파트 마당을 가득 채우는 철쭉이 너무 예뻤고, 연못에서 소금쟁이를 잡으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해질 때까지 놀다가 누구야~ 밥 먹으러 와라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어가던 풍경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마음만은 제일 부자였던 , 내 삶에서 가장 그리운 시간이다. 아마도 우리 네 식구가 모두 있는 그림이어서가 아닐까.


 



퇴근할 때 어쩌다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날이면 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

일이 힘들어서라기 보다, 누구나 그렇듯 직장에서 피할 수 없는 관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는 편의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집에 와서 시원하게  테라 한 잔을 들이켜고 나면, 후~ 조금은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타버릴 것 같은 스트레스가 조금은 식는 느낌, 그렇게 지친 나를 달래고 있으면 아빠가 왜 약속을 못 지키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디에 말씀도 못하시고, 아빠 맘 속에 응어리져 있는 무언가를 풀 곳이 필요하셨겠지.

그렇게라도 막걸리 한 잔을 놓고 당신을 달래다 오셨던 거였겠지.


"아빠, 나 이제 아빠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내 몫의 삶을 잘 살아내고 저 세상으로 가서 아빠를 만나게 되면, 꼭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아빠가 계셨던 삶이, 떠나고 안 계신 삶까지 잘 버텨주게 해 주셨다고. 가끔은 아빠가 미치게 보고 싶은 날도 있어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맘 속에 영원한 히어로라고.


나도 우리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엄마 노릇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나를 다잡게 된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죠?

그렇게 혼잣말로 여쭤보면서.


딸내미와의 약속을 못 지킨 게 미안했던지, 한 잔 하자는 아저씨들을 뿌리치고 퇴근하시던 날, 사고가 있었다. 음주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그렇게 떠나신 아빠.

왜 그날은 한 잔을 안 하셔서 그런 사고를 당하신 건지,

억지 원망도 들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날이 마지임을 아셨을까? 그래서 더 약속을 지키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많이 힘드셨을 아빠, 그곳에선 좀 편하시면 좋겠다.





아빠가 갑자기 떠나신 후, 아빠 몫까지 대신하느라 힘든 내색 한 번 못하신 엄마께 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죄송했나 봅니다. 그래서 제대로 슬퍼할 수가 없었어요. 아마 엄마도 동생도 같은 맘이었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이 많았던 아빠를 글로 기억하고 싶어서 써 봅니다.


아이에게 영원한 울이 되어주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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