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어문 Nov 10. 2021

크로플

자꾸만 생각나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이면 퇴근길에 복권 한 장을 산다.

주식이든 블록체인이든 재테크든 , 종잣돈이 없는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으니

그나마 소심하게 배팅해보는 것이 복권 한 장이다.


당첨운이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서 내 복에 무슨... 했는데,

행운이 들어올 문은 열어두라는 말에 솔깃해졌다.

일주일에 천 원 쓴다고 길바닥에 나앉는 것도 아니고, 복권도 일종의 기부 아닌가? 당첨이 안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될 테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복권을 사기 위한 명분일 수도 있지만;;)


그 와중에 한 장을 살까 두 장을 살까 고민하고 (두 장 이상 살 배짱도 없음 ㅠ), 복권은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면서 집에서 굴러다니는 동전을 긁어모았다.

무겁다고 무시하던 동전이 소중해졌고, 다행히 천 원짜리 몇 장이라도 있는 날은 부자라도 된 듯 2장을 샀다.  누가 보면 대단한 낭비라도 하는 줄 알 거다.


정작 복권 당첨일에는 제대로 확인도 안 하면서... 이렇게 무성의해서야 복권운이 오려나. 그래도 되도록 늦게 알고 싶었다. 결과를 확인하고 나면 버려야 하니까. 되도록 늦게 확인하고 싶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된 심정이랄까.

성냥불이 조금만 천천히 꺼졌음 하는 마음,

곧 사라질 예쁜 트리를 조금만 더 보고 싶은 마음이다.

당첨번호를 알기 전까지는 이 조그만 종이 한 장으로, 집도 사보고 여행도 가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월요일은 복권 한 장 사는 날이 되었다.

복권 판매점 옆에는 호두과자 가게가 있다. 복권을 사러 온 사람들의 달콤한 꿈을 구워내는 듯한 큼지막한 호두과자.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역을 가득 채우는 베이킹 냄새가 너무 고소해서 홀린 듯이 찾아왔다는 아주머니, 나처럼 복권 사러 갔다가 사게 되는 손님들까지 제법 장사가 잘되어 보였다.


작은 공간이지만 베이킹하는 곳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굽는 과정을 볼 수가 있다. 사장님은 그날의 새로운 호두과자를 하나 덤으로 주신다.

" 이번에 새롭게 만든 유자 잼 들어간 호두과자인데 한번 드셔 보세요."

아마도 새로운 레시피를 계속 연구하면서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듯했다. 작은 호두과자 하나하나마다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일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진다.

안 먹어봐도 벌써 맛있는 느낌? 믿음이 갔다.


처음엔 팥이 든 호두과자를 먹어봤다. 너무 맛있다. 팥앙금이 맛있으니 슈크림도 먹어보자. 역시 맛있다. 큼지막한 호두가 씹히는 식감도 고급지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고소하니 너무 맛있었다. 호두과자가 맛있으니 옆에서 굽고 있는 크로플도 맛있겠지? 세상에!! 더 맛있다. ㅎㅎ

복권 한 장 들고 나오던 손이 그렇게 점점 무거워졌다.



 

크루아상과 와플의 달콤한 만남이라는 크로플.

와플보다 작아서 배부른 식사 후에도 부담스럽지 않고, 식어도 바삭거리는 식감은 와플처럼 굳이 데워먹지 않아도 맛있다. 젊은 사장님 두 분이 반죽이나 베이킹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토핑도 먹는 것마다 맛있어서 로즈베리, 초콜릿, 크림치즈, 시나몬, 블루베리, 오리지널까지 다양해서 골라먹는 행복이 있다. 달콤하지만 물리지 않는 맛, 바삭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질감, 예쁘기까지 한 크로플을 보고 있으니 그게 뭐라고 맘이 달콤해진다.




처음엔 복권을 사러 갔다가 크로플을 샀는데, 이제는 크로플이 자꾸만 생각나서 그 복권 판매점을 가게 될 것 같다.

자꾸만 생각나는 맛, 호두 가게 사장님이 쫌 부럽기도 하다.


자꾸만 생각나는 것 이상의 매력이 있을까?

첫눈에 반했다, 심쿵했다, 끌렸다 

좋아하게 되었다는 표현 중에 이보다 매력적인 표현은 없을 것 같다.


나도 자꾸만 생각나는 글을 굽고 싶다.

오늘은 초콜릿 시럽에 넣었다 빼놓은 듯 달달한 글을, 내일은 오리지널에 시나몬 가루를 살짝 뿌려서 진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면 좋을듯한 글을, 혹은 두꺼운 크림치즈를 얹어도 느끼하지 않을 만큼의 내공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두과자를 먹고 크로플의 맛이 궁금해지듯이 내 다음 글이 궁금해지는 날이 오기를, 혹은 한 번 먹으면 계속 먹고 싶을 만큼 끌리는 크로플 같은 매력을 담고 싶다는 꿈을 감히 꾸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