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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문 Dec 07. 2021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그곳

엄마, 나 가슴이 두근거려



아이와 함께 영상 디자인 전시회를 갔다. 미술도 디자인도 1도 모르지만, 그냥 예쁘고 사진 찍을 게 많았다는 정도? 차를 마시며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작품을 감상하며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학부 1학년 중반을 지나는 시점, 아이가 불쑥 꺼낸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말에 나도 덩달아 두근두근해졌다.


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만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아니, 그런 일을 만날 수는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무대 위 아티스트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했던 진로였다. 막상 시작해보니 입시위주의 틀에 박힌 그림이 재미없다고 고민도 했었다. 마음처럼 그림이 늘지 않는다고 종종 슬럼프에 빠져 웅크리고 있을 때도 많았다. 허리가 끊어져라 4시간 5시간씩 서서 그림을 그리며 진학한 디자인 학부. 진학 후엔 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나 했는데 아니었다. 비대면으로 늘어난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새우고, 중간고사 시즌부터 종강까지는 밤샘이 일상이었다. 너무 힘들어하면 어쩌나 좋아하는 일이 숙제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내 길이 아니라 아이의 길이기에 더 조바심이 났던 것 같다. 내가 힘든 것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은, 보기조차 힘드니까.


그런데 설렌다고 한다. 힘든데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의 수많은 고민들이 모두 휘발되는 느낌이었다.  

두근거림, 그 이상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할까. 생각해보니 아이는 학원을 그만둘까 고민한 적은 있어도 그림을 그만두겠다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든, 배를 타고 가든, 아이가 가고 싶은 곳에는 한결같이 그림이 있었다.





지하철 역에 생긴 도서관을 볼 때마다, 우리 구에 생긴 커다란 도서관을 볼 때마다, 자꾸만 그곳으로 눈길이 간다. 이제 와서 사서 자격증이라니 무모하다는 것도 알고, 이 나이에 자격증이 있다고 경쟁력이 있을까 고민도 된다. 그런데... 자꾸만 보게 된다. 동경, 꿈, 부러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말을 걸어온다. 마음이.


"저곳에 들어가고 싶다."

그곳에서 일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심장아, 너 왜 이제야 말을 는 거니,

지금 이러면 날더러 어쩌라고.

어린아이들 맡기고 2년 반이나 다녀서 수료한 영양교사 자격증도 쿨쿨 자고 있는데. 또 교육원을 가겠다고? 일을 하면서 야간에 교육원을 다니고 아이들까지 어떻게 챙기겠다고...라고 나를 설득했다. 삐져나오는 마음을 구깃구깃 밀어 넣.


왜 안돼?

1년이잖아. 2년 반도 했는데 1년을 왜 못해?

두 끼 먹을 거 한 끼 먹지 뭐, 커피 일 년쯤 마시지 말지 뭐,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해보지도 않으면 후회하지 않겠어? 경쟁력 없으면 어때? 사서로 일 못하면 어때?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어? 내 삶에 처음으로 말을 걸어온 심장에게, 한 번은 대답해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

왜 하고 싶은지모르겠다.

그런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 진다.

왜? 그냥, 찾고 싶으니까. 하고 싶으니까.




"음악 하고 싶어요. 자신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작은 아이.

말을 꺼낸 건 갑자기지만, 아이 맘은 아마도 오래전부터 음악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설득을 했을 텐데, 사실 잘 모르겠다. 현실이라면 아이가 더 잘 알고 있다. 진학을 하고 직장은 구하되, 음악은 하고 싶다고 하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사실 대학이 진로에 득이 된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되었다. 관심 없는 전공이 얼마나 지루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대학에 가서 처음 든 생각이 이런 수업 받으려고 그 힘든 공부를 했던가 하는 허무함이었다.


너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봐 라고 말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지 못해서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작곡 프로그램이 필요하면 사주겠다는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다.



이 길이 맞을까 수없이 고민했던 큰 아이가 자신의 길에 확신과 열정을 쏟아붓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믿음과 격려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택은 아이들이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될지 안될지를 고민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 고민해봤자 알 수도 없 일이다. 아이들이 살아야 하는 세상은 내가 살았던 세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살아본 적 없는 세상을 내가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작은 아이 말을 듣는데 아티스트가 떠오른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 못해서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밴드 활동을 해왔던 그.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을 다하고 현실에 충실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자꾸만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현실로 돌아가야만 하는 스스로의 명분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랬던 그는 우승을 했고 지금 아티스트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우승 후에도 한동안 휴직했을 만큼 그의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았지만, 1년 후 그는 음악만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무대 위에서 늘 눈물을 보이는 그는 행복해 보인다. 꿈꿀 수 조차 없던 자신의 무대가 감사하고 꿈만 같다는 그를 알기에, 아이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설사 그가 우승하지 못하고 아티스트에 대한 꿈을 접었다고 해도, 그의 도전은 의미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후회 없이 쏟아부은 사랑처럼,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학비를 들여 사서 교육원을 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큰 아이는

"해봐. 하고 싶잖아." 


듣는 순간 알았다. 이 말이 듣고 싶은 거였다는 걸.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곳

그곳만 보이는 마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

지금 하지 않으면 계속 서성거릴 것 같은 곳.

짝사랑하는 맘이 이랬던가....

그런 게 꿈인 건가.

태어나 처음 꾸어보는 꿈.

내가 이 꿈을 꿀 수 있을지 없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건 좋은 일인데...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마음에게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응원해야 하나.

갈팡질팡한다. 내 꿈도 아이 꿈도.



감동적이었던 싱어게인이 시즌2로 돌아왔다. 겁쟁이가 되어가는 자신에게 무모함을 찾아주기 위해 참가했다는 한 싱어의 말에 찡해진다.

나도 작은 아이에게 쿨하게 말해주고 싶다.

"해봐! 하고 싶잖아~"

아이도 나처럼 듣고 싶은 말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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