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
친애하는 애완 돌에게
몽돌 해수욕장에 오니 신기하게 동글한 돌멩이가 하나도 아니고 셀 수 없다. 석모도의 보문사에서 수많은 돌탑에 걸쳐있는 돌들은 본 적이 있지만 그것들은 이렇게 동글이 있는 게 아니다. 수백수천의 동글한 돌멩이들이 파도에 구르면서 함성을 지른다. 발바닥에 차이는 동글이가 말을 건다. ‘나를 데려가 줘!’
지금은 현장 체험 학습으로 명칭이 변한 소풍은 집과 학교를 핑퐁 거리던 어린 시절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것 같다. 새로운 곳으로 가면 엄마가 싸주는 김밥과 사이다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썰 때 쓸 밀어 버린 꽁다리를 날름 주어 먹는 맛이 최고였다. 왜 우리 엄마는 맛난 꽁다리는 싸주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풍에서 돌아올 때 항상 나의 가방은 매우 무거웠던 기억이 있다. 가방을 열고 주워 온 돌멩이를 목욕시키는 것들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언제부터 나는 돌멩이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시작했을까?
수석은 특별한 돌이며 그 안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특별한 돌을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맨다는 사람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아마 내가 더 크고 나서 본듯하다. 이미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돌을 줍는 취미가 있었다. 외갓집 개울가에서 커다란 자수정을 주워서 한동안 키운 적이 있다. 그때도 흐르는 맑은 개울에 빛나는 자수정이 나에게 말을 건 것 같다. 왜 이렇게 근사한 보석을 아무도 모를까? 한동안 주인이 나타나 나를 자수정을 훔쳐 간 도둑으로 몰아갈지 반짝이는 수정이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렇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어릴 적 우리 집은 네 식구 살기도 좁은 아파트였는데 나의 돌멩이들이 친구의 친구를 데려와 우리 집 식구보다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그 많던 돌 친구는 어디로 갔을까? 발에 밟힐 때마다 극심한 아픔을 선사하는 블록을 하나두 개 몰래 버리던 시절이 있었다. 워낙 가장 작을 블록이어서 하나하나 번호를 매기지 않으면 하나쯤 없어져도 표가 안 나는 블록들. 어쩜 산책하려고 선반에서 떼굴 굴러 떨어진 돌을 밟은 우리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이 뾰족해서 구르지도 못하는 수정이는 어디 있을까? 친척 집이나 먼 곳에 갈 때면 항상 나의 가방 안에 우뚝 자리를 잡았던 수정이는 어쩜 엄마가 매년 여름마다 초록 초록한 오이를 떠올리지 못하게 꾹 누르게 시키기 위해 오이지 항아리에 숨겼을 수도 있다. 여름이 지나면 김장김치를 묻은 김장독 김치와 함께 숨겼을 수도 있다. 내가 가진 돌 중 가장 화려한 수정을 알아본 누군가 데려갔을 수도 있다. 물 주면 자라난다는 수정이는 소금물 안에서도 김칫국물 안에서도 자라났을까?
“혹시 우리 어릴 적 자수정 기억나?” 수정이 생각으로 거제도에 사는 남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기억은 난다고 하다가 갑작스러운 양심선언에 나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물에 넣으면 자란다고 해서 여러 개 만들고 싶어서 망치로 깨서 물속에 담가 놓았는데….” 우리가 살던 집 정원에 암매장했다고 한다. 흐르는 물에서 자라는 수정에 이끼가 끼고 물이 썩어 수정이의 뾰족한 틈바구니에 냄새나는 물때를 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그날 내가 개울물에서 반짝이는 수정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수정이는 엄청 큰 자수정이 되었을까?
발에 차인 동글이를 주워서 자세히 본다. 수석을 모은다던 그 사람이 그랬었다. 평범한 돌이 아니라 수천 년 지구를 굴러다닌 것들이라고. 한때는 태산이었을 수도 있을 조약돌에 말을 걸어본다. 다른 돌과는 다른 색깔이어서, 혹시 수백 년 전 향유고래가 하품하다가 덜컥 굴러 나온 돌일까? 수많은 이야기가 몽돌해변에 와글거린다. ‘왱 ’ 하는 소리와 함께 해양 감시하는 드론이 떠서 우리를 지켜본다. 여기 있는 몽돌이 있는 곳은 한려 국립공원 몽돌 하나하나가 나라의 재산이라고 한다.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몽돌을, 바다를 향해 물수제비를 날린다. 언젠가 다시 물 위로 올라오겠지. 언젠가 다시 만날 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나에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