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보면 좋아하는 거 찾을게
잘 다니던 항공사를 그만두겠다는 폭탄선언에 나는 한마디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제 25살 딸의 선택에 맡기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 한마디가 매일 아침 혀끝에 떨어질 듯 걸려 있었다.
결심하면 속전속결로 일을 밀어붙이는 큰아이의 성격 덕에 퇴사했고, 또 일을 안 하면 불안해하는 그놈의 성격 덕에 바로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했다. 대형 피부과에서 상담 통역을 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성격으로 마음이 하늘에 떠다닌다.
“오늘은 에어 프랑스 승무원들이 왔어.”
“오늘은 델타 항공사 승무원들이 왔어.”
목덜미가 서서히 뻣뻣해지면서, 혈압이 올라가는 느낌이 난다.
“너 다시 재취업할 거라면서?”
“비행이 천직 같다면서?”
이런 말 안 하기로 결심했는데, 단단하게 결심했는데…. 말이 미끄러졌다.
“너 사실 친구 때문에 흥분해서 네가 먼저 사표 던진 거잖아!”
딸의 물기가 올라온 눈가가 붉어졌다.
“엄마는 내가 승무원이 아닌 게 부끄럽구나.”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나 힘들다고, 비행시간이 너무 많아서 나 항공성 중이염까지 온 거 알면서”
사실 큰딸 몰래 팔로워를 한 큰딸의 동기들이나 선배 승무원들의 비행 사진을 보면서, 불과 ‘한 달 전에 하와이 저기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니 배가 아팠다.
‘사무장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그만둘 거야’라고 하던 동료가 정직원이 되었다는 소식에 딸을 보는 내 눈에 힘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것 봐, 그 친구는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지?”
나의 입술에서 미끄러지는 말 중 마지막으로 부여잡은 말이었다.
어디를 가나 적응을 잘하는 큰아이를 보면서, 지금 병원의 편안함에 매몰될까 불안했다.
사실 나는 딸이 날아오르길 바라면서, 날아오르지 못한 과거를 본다.
몇 년 전, 큰딸은 뜻이 맞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과 술이 없는 콘셉트 파티를 만들었다.
비행 일정 때문에 파티 창립 멤버지만, 정작 파티에는 참석을 못 하다가, 이번에는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다. ‘내면에서 자라는 아름다움’이라는 콘셉트의 파티였다. 몇 개국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뮤직비디오 만드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스무 명 남짓 모였다. 큰딸은 외향적 성향이어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집에 오자마자 큰딸이 소리쳤다.
“엄마 나 이제부터 책 읽을래”
“내가 책 읽어야 한다고 했지?
그런데 며칠이나 갈까나?”
큰딸은 용두사미였다. 엄청난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끝맺음은 늘 뱀 꼬리였다.
뱀띠여서 그런가 하고 잠깐 고민을 해본다.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다 할 수 없다는 균열을 불안했다. 딸의 선택에 항상 나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딸은 진상 승객들에게 치이고, 무서운 선배들에게 혼나면서 비행 끝나면 낯선 타지에서 혼자 울었던 나날들을 견뎌야 했다. 의지할 엄마 따위는 없었다. 그의 치열한 일 년을 견디고 맞서면서 내면은 많이 단단해졌다.
나는 가끔 인스타에 훨훨 날아다니는 딸의 동기나 후배들을 보며 배가 아플 때는 배탈약을 먹으면 될 것 같다.
책을 읽어야겠다면서 아직 책의 표지도 넘겨보지 않은 딸이지만, 이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불안의 파도가 어디까지 데려다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다사다난한 인생의 파도 곁에서
성장해 나가는 한 인간으로서 큰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