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vs 사춘기
여섯 아이들 중에 가장난도가 높은 아이는 다섯째와 여섯째이다.
나와 남편은 갱년기 아이들은 사춘기 우리들의 화학반응은 성대를 자극해서 고성방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여느 때보다 더 조용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우리의 이성이 날카롭게 살아있는 날이었다. 시작은 며칠 전 인스타에 청소년 관리감독 기능을 제거해 버린 다섯째가 원인 제공자였다. 작년에 인스타 디엠으로 같은 학년 여자아이에게 부적절한 디엠을 보내서 6개월간 핸드폰 압수를 당했다. 다섯째는 그간 자숙한 모습을 보여서 3월 둘째 주부터 다시 SNS의 세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한드폰은 끝없이 하고 싶은 것은 어른이나 애들이나 다 마찬가지다. 특히 이성에 관심이 많고 친구가 세상에 전부인 다섯째는 SNS에 성실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인스타 청소년 관리 감독 시간을 지워버리면서 나의 분노에 휘발유를 뿌렸다.
'그래, 네가 어느 정도 핸드폰 시간을 잘 조절하는지 두고 보자.'
인스타 사용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제거해 버린 다섯째가 괘씸하긴 했지만, 6개월간의 핸드폰 압수 기간으로 스스로 어느 정도까지는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다섯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핸드폰 가져와서 사용시간 띄워봐."
남편의 절도 있는 목소리에 꽁꽁 얼어붙은 다섯째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하루 평균 5시간 사용! 생각보다 심각하다.'
남편은 여느 때면 큰소리부터 나갈 것 같았는데, 오늘은 목소리가 부드럽다.
고난 주일이어서 일주일 동안하는 새벽 특별 기도회 덕분일 수도 있다.
"그래 아빠가 너는 믿는데, 이건 쫌 아니라고 생각해.
그럼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핸드폰 사용시간을 줄이는 것 정도다.
하지만 다섯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 없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두 번 세 번의 물음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냥, 저한테 맡겨 주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남편의 목소리가 부드러움보다는 강압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너한테 전적으로 맡기는 인내는 우리가 많이 했지만, 결국 너 어떻게 했어?"
그러자 둘째가 격앙된 말로 끼어들었다.
" 야, 너 이제 중3이야. 금방 고등학생되고 그리고 성인 된다고. 이렇게 살지 말고 정신 좀 차려."
그래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같은 말만 반복하는 다섯째의 핸드폰을 남편이 가지 쪽으로 가져왔다.
"나는 너한테 기회를 주고 싶었는데, 그러면 나도 어쩔 수 없어."
그 순간 둘째가 남편 쪽으로 온 핸드폰을 바닥에 힘껏 내리 쳤다.
"야!!!!!!!!"
이때부터는 사건의 급전개
다섯째는 울기 시작했고, 남편은 둘째를 야단쳤다.
핸드폰을 박살 내고 싶은 것은 우리의 맘이지만, 둘째는 20대의 바글바글 끓는 마음으로 정말 핸드폰을 부숴 버렸다.
그리고 울면서 집을 뛰쳐나가는 다섯째.
설마 집을 나가는 건가?
마음 가라앉히면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다음 날에도 다섯째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오피스 텔에 가서 자고 있을 것 같아."
그래도 봄이지만 밤은 날씨가 차다. 다섯째가 길거리에서 노숙할 만한 배짱은 아니다.
결국 아침에 출근하니 오피스텔에서 자고 있는 다섯째를 만났다.
그리고 무단결석 하루 그리고 이틀
나의 분노도 함께 상승하고 있었다.
충분하게 기회를 주었는데, 핸드폰이 이럴 만큼 소중했던 걸까?
아마 나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남편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무단결석 3일이면 가정방문을 해야해요."
다섯째의 담임 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핸드폰을 부수었다고요? 그것은 폭력이에요."
사실 이 대목에서 나는 화가 났다.
나도 안다. 둘째가 선을 넘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제삼자의 입을 통해 폭력이라는 글자를 듣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백번은 더 곱한 것 같은 기분 들었다. 많은 시간이 누적된 갈등, 비단 엊그제의 일로 갈등 표면에 떠오른 일이지만 핸드폰에 얽힌 이해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들다. 기분이 묘하게 얽혀 들어간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 후 나도 마음은 흥분한 상태였다. 지금 다섯째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면 감정이 이성을 앞설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느라 교리 대학에 늦어서 맨 앞자리에 앉았다. 목사님과 얼굴을 맞대고 듣는 수업
교재 여백에는' 오히려 좋아. 오히려 좋아. 엄마이기 때문에 한번 더 꺾여 주자.'라고 쓰고 있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다섯째에게 갔다.
"점심 먹자."
"메뉴는 네가 골라."
이틀 동안 라면 하나로 버틴 다섯째를 데리고 음식점에 갔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한참 자라는 중학생 다섯째는 메뉴 하나는 부족하다 싶은지, 다른 메뉴도 기웃거렸다.
"핸드폰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부셔요?"
'아! 다섯째의 가출 포인트는 핸드폰씨가 파손되었다는 것이다.'
"그건 핸드폰씨가 주인님은 잘못 만나서 그런 거지.
그런데 아빠는 핸드폰 압수 할 생각은 없었어. 너한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건데....."
"그런였어요?"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이기 때문에 한번 더 졌다.
핸드폰과의 갈등이 생기면 일상을 포기해 버리는
다섯째의 버릇을 고치고 싶었던 강한 마음으로 자퇴까지도 생각했던 나의 마음을
현생으로 다시 불렀다.
나의 분노가 이만큼 극까지 달려갔는데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 회사에서 다섯째 가출했다고, 어디 잘 아는 킬러 없냐고 물어보고 다녔어."
남편에게 다섯째에게 점심은 물론 디저트까지 먹으러 왔다고 전화를 했다.
"엄마 제가 공부가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엄마가 공부 잘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니 막막해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고민 중이에요."
그래
엄마라서 오늘도 한번 더 진다.
하지만 이건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겨울을 버틴 아이가 지금 조용히 꽃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