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차를 잡아주세요!"

<30년 차 경찰관의 기록>

by 알콜헌터

<이 글은 현직 경찰관이 지구대 근무 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띵동' 알람과 함께 지구대 문이 열린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키 작은 여성이다.
마스크 탓에 조그마한 얼굴이 다 가렸다. 모자까지 깊게 눌러써 눈동자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구대 안 근무자들을 둘러보곤 알 수 없는 긴 한숨을 내쉰다.
마스크 넘어 콩알 같은 목소리로
"지금 제가 어떤 남자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는데요.... 그 사람 신분을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는 남자인가요?"
"아뇨!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인가요?"
"아뇨! 몇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대신 미행을 시키기도 합니다."

"지금 근처에 있나요?"
"아뇨! 지금은 없지만 또 나타날 거예요" "장애인 실어 나르는 차량이요, 그 차 운전자가 저를 계속 미행하고 있어요"

'장애인 실어 나르는 차라니...'
그녀는 교통약자이동차량 운전자를 용의자로 꼽고 있다. 그것도 조직적으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왜?'

나는 정상적 대화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 전화번호를 달라고 한 후 상황근무 중인 현순경에게 넘겨주었다.
"일단 사건접수 해서 기록 남겨두는 게 좋겠어"

잠시 후 현순경이 짤막하게 말했다.
"팀장님! 고지수 씨(가명) 코드 4로 10여 건 접수 기록 있습니다."
"모두 상담종결과 귀가조치입니다."

그제야 그녀의 증상을 알게 되었다.
이미 다른 팀에서 여러 번 취급했었다. 전형적인 피해망상이었다.

버스에 같이 탔던 사람에 대한 미행 신고로 경찰이 여러 번 출동하기도 했다. 심지어 대상자인 남자는 그녀보다 먼저 타있었는데도 미리 알고 탑승하고 있었다고 신고한 전력도 있다.

112 신고한 이상 출동과 확인조치를 해야 해서 버스를 추적해 대상자인 남자의 인적사항까지 확인한 기록도 있다. 물론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었고 엄청나게 불쾌해했다는 반응까지 적혀 있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일은 없을 거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설명을 해보지만 예상대로 그녀의 확신은 단단했다.
그동안 자신이 당했다고 내용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데 너무 구체적 내용을 진지하게 말을 해 그녀의 망상에 빠져들 것 같았다.

더 이상 사건접수 진행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졌다.
"고지수 씨 혼자 사세요?, 결혼은 하셨나요?"
"혹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이어진 나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그 차량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경찰에서 그 차량 잡아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이제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어떻게든 달래서 귀가시키도록 해야 한다.
"일단 우리가 상담내용을 접수해 놨으니 나중에라도 그 차량이 고지수 씨한테 말을 걸어오거나 하면 바로 112 신고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저희들이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다행히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알겠다고 대답했다.
얼른 순찰차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뒷좌석에 앉은 그녀가 아크릴 가림막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근데 그 차량보이면 잡아주실 거죠?"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집까지 이동하는 시간 10분 정도인데 설마라는 생각으로....

순찰차가 지구대에서 출발해 두 번째 교차로 신호대기 중이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그녀의 말이 그 차를 불렀나?

순찰차 앞으로 교통약자이동차량이 가로질러 가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못 봤겠지라는 나의 순간의 생각을 깨는 말이 들려왔다.
"앗 보셨죠? 지금 지나갔어요!"

나는 시치미를 뗐다.
"무슨 차요?"
"그 차량요"
"못 봤는데요"
"지나갔어요 바로 따라가 주세요"

지금 상황에서 따라간다 한들 의미 없지 않은가. 지금 열일하고 있는 차량을 불러 세워 뭘 할까 싶어 조금 억양을 올렸다.
"그만하세요, 나중에 그 차량이 고지수 씨한테 해를 가할 때 그때 신고해도 되잖아요"

그녀는 아쉬운 듯 혼잣말로 연신 "잡아야 되는데"라고 되뇌었다.

데려다 달라는 집 근처에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 주고 지구대로 복귀하려니 그녀가 다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 차 잡았어야 되는데. 도와주신다고 했잖아요!"
'솔직히 그렇게 말한 건 맞지만 그 차량을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지 않았나...' 할 말 없는 나는 원론적으로 대응했다.

"고지수 씨 오늘은 집에 들어가시고 나중에 또 만나면 112 신고 주세요"
순찰차가 그녀에게서 멀어졌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시선은 순찰차를 향한 채로....

지구대로 돌아와 그동안 그녀가 신고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폈다. 신고 당시 자신이 지목했던 대상자에 대한 검문을 마친 후에는 이상 없음을 수긍했다고 적혀있다.

그녀의 불안을 해결할 유일한 곳이 경찰이었고 그래서 지구대를 찾았던 것인데 내가 너무 성급하게 마무리하려고 한건 아닌지.... 그리고 순찰차 귀가 중 교차로를 가로질러 간 교통약자이동차량을 검문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아 씨~~ 왜 꼭 그 타이밍에 지나가냐고"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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