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30년 차 경찰관의 기록>

by 알콜헌터

<이 글은 현직 경찰관이 지구대 근무 중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우리 지구대 관내에 올레 17코스가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코스여서 늘 많은 사람이 모인다.


포구 끝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햇빛에 비치는 잔물결인 '윤슬'을 보며 두 손을 꼭 잡고 있는 연인.

도로를 따라 달리는 사람들과 무지개색 연석에서 인생샷을 찍는 이들.

오늘 내가 마주한 해안도로의 풍경이다.


하지만 27년 전 가을의 기억은 다르다.

경찰 생활을 하며 잊히지 않는 몇 안 되는, 커다랗고 불편하며 아주 오래된 기억 중 하나다.


포구에 어린아이들이 빠졌다는 신고를 받고 순찰차를 몰았다.

포구가 가까워질수록 지는 햇살에 흔들리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현장에 도착하니 자가용 한 대가 급하게 포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저 차에 아이들이 타고 있을 거라는 확신.


현장에 있던 아이 아빠가 아이 둘을 건져내 급히 병원으로 간 것이었다.

둘은 남매는 아니었고, 동네 아이들로 다섯 살 여자아이와 세 살 남자아이가 포구에서 놀다가 발을 헛디뎠다고 했다.


아이들의 상태를 보고해야 했기에, 병원 응급실을 수소문해 달려갔다.


응급실은 분주했다.

아이들은 양쪽 침대에 나뉘어 누워 있었지만, 의사와 간호사 모두 한쪽 침대로만 몰려 있었다.

세 살 남자아이가 더 위급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다섯 살 여자아이는 다른 편 침대에 홀로 눕혀져 있었다.

가까이 가서 이름을 물었지만 대답 없이 울기만 했다. 간간이 헛구역질도 해댔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몹시 추워 보였다. 젖은 반바지는 몸에 딱 붙어 있었고, 웃옷은 벗겨진 채 얇은 러닝 하나만이 가녀린 몸을 지키고 있었다.


곁에는 아이 엄마가 따라 울며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빰을 쓰다듬었다.

손을 쥐었다가 놓았다가, 다시 쥐었다가 놓았다가.

얼굴을 어루만지다가 이마를 짚었다가, 다시 뺨으로 내려왔다가.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그 손길이 멈추면 아이도 멈출까 봐 두려운 것처럼.

"아이 엄마신가요?"

"네…."

"아이는 좀 어떤가요?"

"모르겠어요. 계속 울기만 해요. 아까는 구토도 했어요."

"의사 진료는 보았나요?"

"아뇨, 저쪽이 더 위급한 것 같아서 말 못 하고 있어요…."


현장을 뛰다 보면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익수 사고에서 구토를 한다면 토사물이 폐로 흡입될 수 있어 반드시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 엄마는 내 자식보다 더 급해 보이는 다른 아이를 위해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내가 나서야만 할 것 같았다.


의료진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곁에 서 있던 간호사에게 말했다.

"바쁘시겠지만, 저기 여자아이도 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내가 너무 조심스럽게 말했던 걸까. 간호사는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눈이 마주친 시간 1초. 아니 0.5초.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응급실을 나오며 엄마에게 빨리 진료를 봐야 할 것 같다는 당부만 남기고 순찰차에 올랐다.


파출소로 돌아오는 내내 응급실의 잔상이 떠올랐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엄마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갈까.

지금쯤 진료에 들어갔을까.


관내 진입을 할 즈음,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왔다.


조수석에 있던 김 경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까 그 병원 앰뷸런스 같은데. 아이들을 큰 병원으로 옮기는 거 같은데!"


파출소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의 손과 발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세 살 남자아이는 의식을 찾았고요."


"다섯 살 여자아이는 심정지 상태로 제주시 병원으로 이송됐어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그 병원이 원망스러웠고, 간호사의 차가운 눈빛이 원망스러웠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했다. 숨쉬기 힘든 고통을, 살고자 했던 그 마지막 울음을.

우리는 아이의 울음을 '살아있음'의 신호로 오해했다.


그것은 삶을 향한 마지막 사투였고, 제발 나 좀 봐달라는 처절한 비명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사건은 한동안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이들이 빠졌던 포구 근처만 가도 숨이 막혀왔다.

근무지를 옮기며 기억은 조금씩 흐려졌지만, 절대로 지울 수 없는 가슴속 흉터가 되었다.


오늘 해안도로에서 당시 포구의 냄새가 난다.

27년 전의 기억이 비릿하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포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아름다운 윤슬 뒤편의 비극,

아이를 구하려는 어른들의 분주함.

그리고 무지개 연석 너머 어딘가에 있을 아이.


포구는 늘 비극을 숨기기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다.


27년 전 그날 조금 더 단호하게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지금의 나였다면, 그때보다 더 무례하고 집요하게 의료진을 붙들었을까.

월권을 따지기보다 사람을 살리는 게 먼저라고, 저 아이의 울음이 심상치 않으니 당장 진찰해 달라고 소리를 높였을까.


27년 전의 그 서툴고 조심스러웠던 젊은 순경이 원망스러워 한참을 바다만 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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