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체미파'

<30년 차 경찰관의 기록>

by 알콜헌터

경찰지구대.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 한두 번 들릴까 말까 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낯설고,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역시 경찰 순찰차가 편하지 않다.

출동을 나가는 일도 긴장되는 탓에 유쾌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요즘은 퇴직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순찰차를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경찰학교를 졸업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근무기록부의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새내기 경찰들이다.
이들은 순찰차를 좋아하고, 타고 다니고 싶어 한다.

특히 운전대를 잡으면 대한민국의 정의를 바로 세울 것 같이 근엄하게 바뀐다.
지금의 나와 많이 다른 표정이다.

나의 초임시절을 한번씩 생각나게 해 잠시 미소를 짓다가 눈이 마주치면 내 생각이 들킨 것 같아 뜨금할때도 있다.

내가 근무하는 지구대는 시내 중심 지구대라 신입들이 오면 가장 먼저 배치된다.
작년 초, 우리 팀에도 새내기 둘이 들어왔다.
둘 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다.

외근 장구를 매뉴얼대로 점검할 때면 제법 프로다운 모습도 보인다.
무전기, 수갑, 방검장갑, 삼단봉을 확인하고
무기고에서 테이저건의 짧은 전압음을 확인하고 난 뒤 3.8 권총 실탄을 밀어 넣는다.

신입 강 순경은 합기도 전국대회 메달 보유자다.
180센티미터의 키에 다부진 체격. 제복이 잘 어울린다.
신입이지만 함께 출동을 나가도 든든하다.
직접 시험해 볼 수는 없지만, 아마 우리 지구대에서 제일 맷집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신입 박 순경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다.
간단한 근무기록 하나도 꼼꼼히 챙긴다.
내 눈에는 외근보다는 기획이나 조사 분야가 더 어울려 보인다.

신입들이 들어온 지 한 달쯤 지났을까.
또 한 명의 신입을 받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순환근무 첫 발령을 지구대로 받은 경찰대학교 졸업생이었다.
두 신입 순경보다 어리고 계급은 경위.
두 신입과 잘 어울릴지 걱정이 있었지만 다행히 세 사람은 형, 아우 하며 빠르게 지구대 시스템에 적응해 나갔다.

경찰대를 나온 허 경위는 학교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맡았던 실력자다.
자신의 노래를 모아둔 SNS 채널을 운영할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다.

어느 날, 셋이 지구대 뒤편에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몸을 뒤틀 정도로 웃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오래된 형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들을 통칭해 한꺼번에 부를 이름을 고민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
음악, 체육, 미술.

‘음체미’.

한 번 불리기 시작한 이름은 지구대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음체미’라는 이름 아래 이들은 하나가 됐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조용하던 박 순경, 즉 ‘미술’의 성격이 조금씩 ‘체육’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동을 나가서 진상 민원인을 대할 때도 예전보다 과감해졌다.
나쁜 변화는 아니다.
강약 조절은 경찰에게 필수 능력이니까.

강 순경, ‘체육’은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경찰 물리력 교관 과정 교육을 자청해 다녀왔고 체력 관리에도 진심이다.
발로 뛰는 형사 분야가 잘 어울릴 것 같지만, 본인은 섬세한 여성청소년 업무를 희망한다고 한다.

허 경위, ‘음악’은 두 형 사이에서 관계를 조율한다.
어리광도 부리고, 선배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공부도, 사람 관계도 빠지지 않는다.

셋의 순수한 우정이 절정을 이를 즈음
지구대에 신입 순경이 추가로 들어왔다.

'이 순경'이다. 게다가 여경이다.

수사 전문 교육을 받은 실력자.

총기 있는 눈빛과 짓궂은 농담도 술술 넘기는 언변이 강점이다.

첫 출근 날, 음체미 셋이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신입을 위한 호된 신고식을 준비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 순경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선배님들!" 하고 활짝 웃자,

음체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그냥 웃었다.


평소 지구대를 찾는 주취자를 강한 말빨로 누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이 순경은 알파급으로 단번에 떠올랐다.

음체미에 알파가 더해지자 기세는 역대급이 됐다.
팀원 10명 중 4명이 한 덩어리다.
팀 안에 거대 노조가 생긴 셈이다.

팀장 입장에서는 고맙기 그지없다.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서로 멘토가 되어 준다.
걱정을 나누고, 고민을 공유한다.

사실 직장생활의 어려움은 일보다 사람이 더 크다.
일이 편해도 사람과 맞지 않으면 직장은 지옥이 된다.
반대로 일이 힘들어도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버틸 수 있다.

30년 동안 몸으로 배운 이 사실을
이들은 1년도 안 돼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있다.

지금 음체미파는 지구대 사무실 메인데스크를 점령해 재미있게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음악’의 입대를 두고 설전 중이었다.

체육(강 순경)은 "경찰대 나왔으면 특공대나 UDT는 다녀와야지!"라고 했고,

알파(이 순경)는 "요즘 시대에 무슨 근성론? 편하게 다녀오는 게 최고지"라고 맞받았다.

음체미파.
기막힌 조합이다.
앞으로 30년 이상, 이 관계가 건강하게 이어지길 바란다.


"너희들의 아름다운 불협화음이 대한민국 경찰지구대 온도를 1도라도 높여놨으면 좋겠다."


토요일 연재
이전 02화커피 한 잔의 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