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단(淑旦)
“여보세요, 이〇〇입니다.”
그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봐요.” 순간 멈칫했다. 좋은 일이라니? 그저 평소처럼 인사했을 뿐인데. 그분은 내 목소리에 활기가 느껴졌다고 했다. 이상하게 그 말이 참 기분 좋게 들렸다. 퇴직 후 어딘가 기운 빠져 보이지는 않았을까 염려하던 내게, 그 말은 작지만 따뜻한 위로였다.
그날 이후 여러 생각이 겹겹이 떠올랐다. ‘내 목소리가 그렇게 괜찮았던가’ 또렷하고 힘 있는 편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좋은 인상을 줄 줄은 몰랐다. 공적인 자리에서 발표나 설명이 잘 풀렸던 것도, 어쩌면 그 덕분이었을까. “목소리 톤 좋으시네요”라는 말은 가끔 들었지만, “좋은 일 있으세요” 같은 반응은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은 업무적인 이야기를 전화로 나누다 목소리에서 신뢰가 느껴진다며 바로 찾아오겠다 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목소리 하나 믿고 찾아와 사건을 의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일을 떠올릴 때면, 묵직한 내 목소리가 신뢰를 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목소리라는 것은 단순한 소리를 넘어, 그 사람의 태도와 진심을 전하는 언어가 아닐까.
어떤 분은 “노래도 잘하시겠어요”라며 웃으며 말한다. 그럴 때면 “그건 좀요…” 하고 멋쩍게 웃는다.
사실 나는 노래방 공포증이 있다. 한 곡을 겨우 부르고 나면 마이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분위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리곤 했다. 결국 “이만하겠습니다” 하고 물러서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런 내가,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노래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입모양만 따라 했다. 고음이 어딘지, 숨 쉬는 타이밍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지휘자 선생님이 말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계명으로 한 번 불러보세요. 리듬을 타야 합니다.” 그 순간, 초·중·고 시절의 음악 시간이 떠올랐다. 도, 레, 미, 파, 솔…. 몇 번이고 반복하고 계명을 대입하니 음이 맞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낸 소리가 멜로디가 되어 되돌아왔다. ‘내가 노래를 못 했던 게 아니라, 그냥 안 해봐서 몰랐던 거였구나.’ 연습 없이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65년을 살아서야 깨달은 소박하지만 깊은 진실이었다.
요즘도 사람들은 말한다. “목소리가 참 좋으세요.” 그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절로 밝아진다. 그날, 내가 좋은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내 목소리가 먼저 내 기분을 밝혀주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목소리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자존감이란, 그렇게 조용히 스며들듯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