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통하는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꽤 빨랐다.
나는 그걸 내 장점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5년 다닌 회사에서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박대리는 눈치가 참 빠른데, 가끔은 눈치 없는 척 해야할 때도 있어. 늘 좋은 건 아냐."
윗분들이 수근대는 이야기를 듣고, 주제를 눈치껏 유추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인 척 하기 싫어하는 모습이 거슬렸던 걸까.
그 날부터 나는 '눈치 빠른' 나의 모습이 싫어졌다.
삼남매의 가운데 껴있는 나의 불쌍한 처지의 반증인 것 같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나의 유년시절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눈치 빠르던 나는 한국 나이로 30살에 호주로 이민을 왔다.
왜 눈치껏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는 해외에 나가 살게 될거란걸.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텐데. 수능 1등급에 연연하기보다, 영어회화 실력에 좀 더 신경 썼을텐데. 왜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선 깜깜이였던걸까?
호주에 와서 깨달은 재밌는 사실은, 눈치도 문화와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작동한다는 사실이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영어도 잘 못알아들으니,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눈치 없이 해맑기만 한 드라마 속 긍정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단지 그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긍정'이 아니라 '전전긍긍'하며 눈치 없이 해맑은 바보가 되었다는 것이지만.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나 혼자 해본 일은 운전면허증을 바꾸러 Service NSW라는 공공기관에 가는 일이었다.
그냥 한국 운전면허증을 영어로 번역한 뒤, 공증을 받아 가져가기만 하면 아무 말 안해도 알아서 다~ 해준다는 말만 믿고 호기롭게 떠난 길이었다.
그런데 맙소사, 비자에 대해서 officer가 뭔가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거다.
'제발 눈치야, 눈치껏 좀 알아들어줘봐!' / (눈치 : 입력된 명령을 처리할 수 없습니다)
부랴부랴 남편에게 전화해 officer에게 휴대폰을 건네주는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 여기서 1인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2025년 시드니 이민 5년차.
나는 여전히 눈치 상실한 채, 1인분조차 해내지 못하며, 내 인생이 눈치껏 흘러가주길 바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