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
언니의 진단명을 듣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왜 우리언니가?" 였다.
백혈병은 교통사고라고 한다. 근데 왜 그 사고를 우리 언니가?
언니는 살면서 내내 착했다.
친구들에게도 착했는지, 직원들에게도 착했는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도 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니는 가족에게 내내 착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나는 언니와 싸워본 적이 없다. 자매간에 그 흔하다는 옷 싸움도 해본 기억이 없다.
언니는 늘 나에게 양보했다. 지금도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언니가 잘 입는 옷까지 바리바리 싸서 들고가는데, 언니는 한번도 나한테 미운 소리를 한 적 없다.
언니의 투병 중에 남동생이랑 통화를 하는데, 동생이 울먹이며 한 말도 "누나처럼 착한 사람이 왜?" 였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착한 사람에게 병마가 덮쳤다. 병마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 무능하다.
무신론자인 나는 무능한 신을 혐오하는 혐신론자가 되었고, 동시에 모든 신에게 언니가 이겨낼 수 있게 기도하는 모순적인 사람이 되었다.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도 언니는 내내 착하다. 아픈데도 참아본다고 하고, 내가 주물러준다 해도 본인이 할 수 있다 하고, 내가 소변통을 비워준다고 해도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착한 언니를 알아서 엄마는 근심이 많아진다. 누구한테 착해야 하는지 대상도 모르는 채, 괜찮다고 하다가, 참는다고 하다가 병을 키울까 봐.
그런 언니를 알아서 나는 질문이 많아진다. 춥지는 않아? 덥지는 않아? 갑자기 왜 걷다가 멈춰 서? 어디가 아파? 배가 불편해? 어떤 느낌으로 아파? 계속 아파? 간헐적으로 아파?
언니는 그 고통들을 참아내려다가도 집요하게 묻는 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려고 한다.
"머리가 무거워. 이마를 누가 쿵쿵쿵쿵 하는데?"
"배가 막.. 괜찮다가 갑자기 안에서 슉- 한바퀴 도는 것처럼"
나는 아픔을 저렇게 표현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누가 봐도 아픔을 말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애써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 같은 어설픔.
언니를 괴롭히는 백혈병에게만큼은 언니가 조금 많이 나쁘게 대했으면 좋겠다.
독이 잔뜩 들어서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적어도 내가 너는 이겨버리겠다는 오기로. 이깟 병에게 내 건강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