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인간의 감정은 의사소통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감정을 통해 드러나는 표정과 행동을 보고 기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면 상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의 감정이 없다면 어떨까?
1) 느린 아이
어느 날 하굣길에 내 앞을 걷던 여자애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걔가 엎어진 채로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애가 일어나길 기다리며 여자애의 뒤통수에 매달린 미키마우스 머리끈만 바라봤다. 하지만 넘어진 애는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친구가 다쳤는데 괜찮냐고 물어볼 줄도 모르니? 소문은 들었지만 애가 보통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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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최소한의 소통을 위해 상황별로 대답과 반응을 알려준다. 하지만 인간의 풍부한 감정을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사람들은 주인공을 별종, 사이코패스 취급했다.
윤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식물인간이 되면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심 박사, 곤이, 도라를 만나면서 점점 성장하는 과정을 겪는다.
두 사람은 내 세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할멈과 엄마의 부재로 알게 된 건 세상에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거였다. 한 명씩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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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윤재가 ‘감정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아마 어릴 때는 감정을 주입식으로만 학습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사람을 만나고 소통을 연습하면서 비로소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윤재가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느렸던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 너 MBTI ‘T’야? 왜 내 말에 공감을 못해
이 책을 읽고 MBTI에 대한 실제 경험이 생각났다. 엄마와 오빠는 T 성향이고, 나는 F 성향이라 자주 충돌을 겪곤 했다. 나는 공감과 위로를 원하고 고민을 상담하는데, 자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너무 서운했다. ‘왜 엄마랑 오빠는 내 말에 공감을 못해주지? 감정이 없나? 혹시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면서, 정작 엄마와 오빠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서운함을 느끼기 전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내 세계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세계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MBTI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게 엄마와 오빠의 사랑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슬퍼하는 원인을 제거하면 행복해지니까, 그 해결책을 제시해 줌으로 나를 달래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공감이라는 것은 결국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거 아닐까?
2)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요?
인간은 공감하고 소통하는 동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너무 쉽게 타인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 한정으로만 격한 공감을 해준다는 의미이다. 당장에 먼 나라에서 굶어 죽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개개인의 세계는 너무 작아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내가 모르는 타인의 세계를 경험하면, 나의 작은 세계를 넓혀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인간관계와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별종 취급하거나 혼자 상처받지 말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엄마와 오빠처럼 T 성향의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말해줘야 말이 잘 통한다. 위로를 해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것보다, "나는 해결책보다는 위로가 받고 싶었어."라고 직접 말해주는 것이 더 좋다. 그러면 아마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해줄 것이다.
나는 감정이 없어도 소통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상황에 대해 이해시키는 과정을 겪는다면,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분명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의사소통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대화할 때 먼저 상대의 소통방식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상대를 알면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고, 그러면 소통할 때의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