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빠가 셋이 있다. 생물학적인 오빠와 한 이불 덮고 사는 오빠, 그리고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는 용필이 오빠. 남편은 독보적인 오빠를 갈망했지만 두 번째 오빠로 만족해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편단심 좋아한 용필 오빠를 이길 수는 없는 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질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옹색한 일인지 아는 그여서 두 번째 오빠로 멋지게 타협을 했다.
나의 첫사랑은 두 번째 오빠다. 손끝만 닿아도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귓가에 울렸던 첫 키스의 종소리, 벌렁거리는 숨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올까 헛기침을 마구 해댔다. 내가 많이 사랑한 남자. 밤새 통화하다 잠이 들기도 하고, 한 번으로는 부족해 하루에 두 번 세 번 만나기도 했다. 결국 헤어짐이 힘들어 서둘러 결혼을 했지만 이 십 년 넘게 살다 보니 뽀뽀가 더 이상 날 떨리게 하진 않았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난 씩씩해졌고, 남편은 부드러워졌다. 나의 사랑은 심심해졌지만 대신 믿음은 단단해졌다.
여전히 말랑거리는 나의 긴 사랑은 용필 오빠다. 내 나이 열 살부터 오빠를 맘에 두었으니 참으로 오래되었다. 남자친구가 생겨도, 남편을 만났을 때에도 오빠를 향한 마음은 특별해서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음 한편에 고이 간직한 오빠 향한 마음은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오빠 향한 내 꿈도 꺼내 놓진 못했지만 잊은 적 없이 늘 품고 있었다.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에 깜짝 출연한 오빠를 보면서 수줍던 내가 탤런트를 꿈꾸었고, 100분 동안 땀 흘리며 노래하는 오빠에게 수건을 던져주고 싶어 매니저가 되고 싶었다. 용돈 모아 잡지 TV 가이드를 사 모으다 오빠를 취재하는 기자도 되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우면서 다시 세운 나의 꿈은 오빠 집 앞 편의점 점장이었고, 더 나이가 들어선 오빠네 가사도우미가 되는 게 아무도 몰래 꾸는 나만의 꿈이었다.
첫사랑과 결혼하고 나의 긴 사랑과 여전히 열애 중이다. 설거지하다가도 오빠 노래가 슬금슬금 튀어나오고, 부르다 보면 어느새 미소가 절로 난다. 주체 못 한 흥은 엉덩이를 실룩거리게 하고, 저주받는 뻣뻣한 몸뚱어리는 어쩌려고 이리 흔들어 대는지. 남편은 또 시작이라며 고개를 내 두르지만 웃고 있는 걸 나는 매번 보았다.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나의 사랑을 인정한 남편은 나의 열정을 응원하기 시작했고, 용필 오빠 콘서트 소식이 들려오면 몇 달 동안 즐거워하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마흔다섯 밤만 자면 남편과 손잡고 대구 콘서트. 우리 조용필님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아마 그날은 사랑하는 이가 두 명이나 돼서 손만 잡아도 떨리고, 목소리만 들어도 떨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