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야기했듯이 돌에게 구멍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바람, 화산 등의 자연 때문에 생기기도 하며 같은 돌끼리 부딪혀서 생겨나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화아파트로 오기 전 이곳저곳 부딪혀서 금이가긴 했지만 구멍이 생기진 않았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고 난 후, 알 수 없는 파란 바람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휩쌓인 난 알 수 없는 우울감을 느꼈고 바람이 지나간 후엔 가슴쪽에 동그란 구멍이 생겨버렸다.
처음으로 구멍이 생겼을때, 가슴으로 숭숭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차갑고 쓰리게 느껴졌다. 또한 이렇게 만든 바람이 언제 다시 불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렇다보니 무던하고 동글동글하던 나의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하게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이 구멍을 누군가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치도 많이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구멍을 가리면 다른 친구들이 보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여러가지 재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첫번째 재료는 나뭇잎이었다. 나뭇잎은 구멍 크기보다 커서 쉽게 가려졌으나 잘 찢어지는 재질이라 구멍을 가리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도토리였다. 도토리는 크기가 구멍 크기보다 작아서 그것을 가리지 못하고 떨어졌다. 놀이터에 있는 모래와 장난감 등 여러가지로 가려봤지만 그 무엇도 구멍을 가리고 채워주지 못했다.
이것을 가릴 방법은 없고 마음을 비워야만 내가 편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명상도 해보았지만 내 스스로가 구멍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니 다 소용없어졌다. 급기야 난 내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내가 부숴지는줄도 모르고 밤낮 정신없이 구멍을 때렸다. 결국 구멍은 손쓸 수 없에 커져버렸고 난 망연자실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하늘의 별들은 아름답게 반짝였고 난 그들을 보며 저들은 나처럼 구멍은 없을거라는 생각에 부러워했다. 그때, 별똥별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소원을 빌었다.
'별똥별님, 제가 바뀔 수 있는 기회를 딱 한번만 허락해주세요. 지금의 전 구멍도 있고 너무 못나서 가치가 없어요.'
소원을 빌기 무섭게 평화아파트 뒤의 연밭에 큰 소리가 났고 큰 빛이 일어났다. 나는 너무 놀래서 잠에서 깬 냐옹이의 등에 타 함께 연밭으로 갔다. 그곳엔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겼고 그 중심에는 검회색의 빛나는 동그란 돌이 있었다. 무서웠지만 비틀거리고 있는 그 돌을 둘 수 없었다. 사람들이 보면 이 돌을 신비의 돌로 생각하고 가만두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냐옹이에게 부탁하여 그 돌을 등에 싣고 함께 놀이터로 이동을 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나뭇잎 위에 그 돌을 눕혔고 새벽마다 열심히 모아둔 이슬을 한모금씩 먹였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검회색 돌은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고 우린 그런 그를 진정시켰다.
"여긴 어디죠?! 저 죽은건 아니죠?"
"네, 다행이도 살아있어요. 여긴 평화아파트 놀이터에요. 혹여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할까봐 우리가 여기로 얼른 데려왔어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라면....여기 혹시 지구인가요?"
"네, 혹시 우주에서 온거에요? 아까 별똥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던데 혹시 당신인가요?"
"아, 네. 제 이름은 우석이고 우주에서 왔어요. 예전에 잡지에서 보니 사람들이 우리가 지구에 떨어질때 그 모습을 보고 별똥별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실례가 안되면 그쪽 이름을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전 돌삐에요, 이돌삐. 별똥별이 돌이라니....너무 신기해요! 그나저나 우석씨는 정말 제가 생각했던것처럼 너무 예쁘네요. 반짝반짝 빛나고 구멍도 없고....전 구멍이 엄청 커서 못생겼거든요. 우석씨처럼 매끈하고 예쁘고 싶은데 말이에요."
"네? 저도 구멍 엄청 많은데요? 안보이세요? 그리고 빛이 나는건 제가 지구로 떨어진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걸거에요. 곧 이 빛도 사라지겠죠."
우석이가 이야기하자마자 그의 크고 작은 구멍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린 서로 놀랐다. 그리고 서로의 구멍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 구멍이 돌삐씨에게 보이지 않았다니 신기하네요. 사실 돌삐씨가 구멍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저도 전혀 안보였거든요."
나는 내 구멍이 다른 돌멩이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되었다. 서로의 구멍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던 그때, 우석이의 구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고 있는 초록색 벌레 이름은 주먹이었고 귀여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노란색 벌레 이름은 레몬이었다.
"인사해요. 주먹이와 레몬이에요. 저도 처음부터 구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마음이 아프다보니 몸에 구멍이 생겨버렸죠. 저는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새 출발을 했고 해왕성의 바람에 휩쓸려서서 살던 집을 잃은 주먹이와 레몬이를 만났어요. 주먹이와 레몬이는 저의 구멍을 보고 안락한 집이라고 얘기해줬어요. 저에게는 너무나도 흉측한 구멍인데 말이에요. 그 후 저는 레몬이와 주먹이를 입양하여 함께 여행을 떠났어요. 이를 계기로 나에겐 못나보이는 구멍이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구멍이었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어요."
우석이의 말을 들은 나는 나의 구멍 역시 내 눈에는 못나보일지라도 누군가를 위한 구멍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구멍으로 누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생각하느라 밤을 꼴딱 새웠지만 쌀쌀한 새벽공기가 나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그러던 중 나의 구멍에 쌀쌀한 아침 바람이 지나갔고 그 후엔 따뜻한 햇살 역시 구멍으로 들어와 이 모든것들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구멍이 비워져있었기에 지나가는 아침바람과 햇살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이 구멍을 비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필요한 존재들에게 나의 구멍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구멍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후, 난 주변을 바라보는 눈이 좀 더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담고싶어했다.
집을 나온지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가족들과 기나긴 이야기를 통해 그 공백을 조금씩 채워간다. 단 하루동안의 이야기이지만 그간의 나의 삶을 부모님께 여지없이 보여드렸고 그들은 그것을 통해 보지 못하셨던 나의 삶에 함께하셨다. 만약 이 글을 누가 읽고 있다면 난 아래의 질문을 그들에게 하고싶다.
"당신에게는 구멍이 있나요? 당신은 그 구멍을 어떻게 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