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경자 Oct 29. 2023

달의 피라미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들은 과거시제였다


예약 티켓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잃어버렸고 

오늘 되찾아와 서랍에 놓아둔 것 같은 역사서였다


과거시제를 먼저 얘기하면 비관적인 명제가 되어

예약 티켓을 사용할 기회가 생겼다

     

어쩐지 그날은 자기 손으로 씻으려고 하더라구요

이 말은 그녀가 예약 티켓을 찾았구나 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붉은 볼을 가진 어머니가 못 먹는 과일 중 하나인 사과를

우리가 먹는 날이면 우는 사람이 늘어났다  

   

달의 피라미드에서 돌아온 운 좋은 사람들은 

자기의 행운을 다 써서 이제 남은 행운이 없어졌다고

색이 없는 글씨체의 편지를 서랍에서 꺼내보지 못했다  

   

살아있는 사람들과 예비된 티켓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경전 같은 피라미드가 높은 굽을 내려놓지 못하고

직각으로 쌓은 계단들이 하늘을 찔러 비가 오는 날이 많았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예약 티켓은 

어머니의 어머니가 가진 거울로 확인할 수 있어

눈물보다 작은 보름달의 옆구리는 늘 비어 있었다


산란한 햇빛들이 피라미드를 빨갛게 물들이면

우리의 사과는 공그르기 하듯 여기와 저기를 붙여

티켓을 가진 사람들을 환송한다   

   

밤이면 제물을 요구하는 달의 피라미드가 늑대 같은 울음소리를 내면

모든 문들은 제단이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