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by 벼리

<나목>

안동 권정생 생가에 다녀왔다.,두 칸짜리 흙벽 오두막은 볼품없었다.사람 4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방, 숨이 막힐 듯한 방 한 칸, 그 옆 시계방향을 따라 이런저런 나무들이 둘러서 있었다. 가지와 몸통만 남아 앙상한 그 나무들은 찬 겨울 바람을 맞으며 담담하게 서 있었다. 꽃도 잎도 열매도 떨어져 무슨 나무인지 증명하기 어려웠지만, 권정생 선생님 마당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남달랐다.


선생님은 태어났을 때도 사망했을 때도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많은 발표작들을 걷어내도 선생님은 오직 글쓰는 사람, 권정생이었다. 선생님은 늘 가지와 몸통만으로 세상을 살아낸 사람이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모습으로, 그래서 당당했다.


우리는 흔히 나무를 꽃으로 기억하고, 열매로 증명한다. 잎이 무성할 때를 생의 전부처럼 여기고, 앙상해진 순간을 실패나 결핍으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겨울 나무들은 무엇도 숨기지 않은 채 맨몸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구부러진 가지의 방향, 상처의 흔적, 세월의 앙상함까지 모두 품은 채 중심을 세우고 서 있었다. 겨울 나무는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더 꾸미지 않아도 온전히 그 자신이었다. 자신을 두르던 포장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나무는 자기 형태를 온전히 갖고 있었다. 권정생 선생님은 나목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낸 분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자 한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허가 눈을 멀게 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려웠다. 벚나무는 찬란한 벚꽃으로, 동백나무는 붉은 열정이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으로, 목련나무는 세상의 모든 순수를 품은 목련으로 사과나무는 사과로 달콤한 자신을 증명했다. 꽃도 열매도 다 내 준 나는, 오롯이 존재만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껍데기같은 생각이었다. 왜 나는 나를 증명하려 했을까.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나는 나일텐데, 긴 세월을 살았으니 빈껍데기는 아닐텐데,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로 당당히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오늘 권정생 선생님의 평생과 마당의 나목을 보고 깨달았다. 나를 가리고 있던 명함들을 걷어낸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바로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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