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2.0 시대의 노년

by 벼리

“ 청년 세대의 개인주의가 자발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면,

고령세대의 개인주의는 타율적 강제에 가까운 것이다.”

성지연 < 2026년에 생각하는 ’개인주의 2.0‘ 시대>

우리는 ’혼자 있는 노인‘을 왜 문제로 보게 되었을까. 전통 사회에서는 노인을 공경하고 효도해야 하는 존재로 상정해 왔다. 국가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돌봄을 효도’라는 가치로 덧씌워 가족이나 공동체에 전가시켰다. 그 결과 신체적으로 연약한 노인을 돌보는 일은 가족의 도덕적 의무가 되었다. 노인을 잘 돌보지 못하면 ‘불효’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이 과정 속에서 사회는 가족에게 책임 프레임을 씌웠을 뿐 아니라, 노인을 독립된 존재가 아닌, ’관리와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위 칼럼에서 개인주의 2.0 시대를 논하면서, 청년 세대의 개인주의를 자발적 선택으로, 고령 세대의 개인주의를 타율적 강제에 가깝게 규정한 인식 역시 이 전통적 사고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여전히 고령 세대를 ’돌봄의 대상‘으로, 청년은 ’선택하는 주체‘로 보는 오래된 도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노령 세대는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개인주의 2.0 시대의 노령 세대는 교육 수준, 경제적 활동, 사회 참여, 삶의 선택 방식에서 이전 세대와 다르다. 혼자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첫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단순한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이룬, 소비의 주체로 사회 전반에 역동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개인주의 2.0 시기의 노년을 다시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청년 세대처럼 노령 세대도 취미 활동, 운동 모임이나 종교 활동 등으로 사회와 연결을 이어갈 수 있으며, 경제 활동도 선택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고령 세대를 타율적 강제에 묶어 두려는 사회 인식은 노령 세대를 여전히 ’관리해야 할 위험 존재‘, ’돌봐야할 연약한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시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병원에서는 고령이라는 이유로 외출과 활동에 제한을 둔다. 위험 가능성을 이유로 조기에 개입해 본인의 의지는 상관없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안전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시아버지의 선택권을 거둬 갔다. 이 정당화된 ’선택된 고요‘는 결과적으로 강제된 개인주의에 가깝고, 개인주의 2.0이 지향하는 성숙한 개인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이러한 ’타율적 강제‘는 노령 세대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동시에 사회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시아버지가 고요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가 개입의 경계를 지키며 세심하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노년을 주체가 아닌 돌봄의 대상으로 보는 한, 타율적 강제의 시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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