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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Sep 24. 2022

초가을 볕을 받으며 옥상 텃밭을 본다. 벼알갱이 속으로 가을볕이 들어가는 계절이라 대추 나무에도 시월의 붉은 햇살이 매달렸다. 가지 , 고추, 깻잎, 목숨 붙어 있는 것들이 오래전 물방울이란 물방울을 모조리 삼키고 삶이 시들한지 한풀 숨이 죽었다.


  옥상 난간에 쌀 한 줌을 뿌렸다. 조심조심 눈치를 보며 참새떼가 날아왔다. 참새도 나도 목구멍으로 쌀알을 넘기는 사이다. 우리는 쌀알이 목구멍을 넘어가야 삶이 피어난다. 참새처럼 나도 삶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밥 먹는 일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새떼들은 무엇이 급한지 바쁘게 입을 움직이며 쌀알을 넘겼다. 경계의 눈알을 굴리며 급하게 먹이를 먹었다. 내가 기침을 두어 번 하자 깜짝 놀란 새떼들이 황망히 도망갔다. 멀리도 못 가고 옆집 4층 옥상 난간에 앉아 숨을 골랐다. 이 도시에서 먹이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얼마 후 슬금슬금 우리 집 옥상으로 하나 둘 날아왔다.  길을 위해  때론 목숨도 걸어야 한다.


  지인들과 산길을 걸었다. 지도만 들고 나선 길이라 모두 초행이었다. 선두가 앞장서고 뒤에서 따라갔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선두가 길 하나를 골라 걸어갔다. 잘못 들어선 길도 있었다. 맨 뒤에 뒤따르던 사람이 선두가 되어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산길을 걷다 보면 길의 선, 후가 바뀌는 일이 허다했다. 찾았다고 여겼던 길도  되돌아서야 했던 적이 있다. 길은 길로 이어진다지만 새길을 만들어 가야 할 때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여름 장마철에 산길을 걸은 적이 있다. 갑작스레 폭우가 내리자 흘러내리는 흙탕물에 길이 사라졌다. 공포에 떨던 우리는 겨우 마을을 찾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길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있었다. 공포가 눈을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꺼칠한 손바닥을 본다. 손금도 나이를 먹는지 여기저기 패인 깊고 자잘한 금들이 세상사처럼 복잡하다. 손목에서 시작한 금이 손바닥 가운데를 지나 새끼손가락에서 시작한 금과 만나고 검지 손가락 마디에서 시작한 금이 손목으로 내 달리다 손바닥 가운데 막진 금과 만났다. 무수히 많은 금이 만나고 갈라지고 새로 생겼다.


   이 길 저 길에서 늘 선택을 해야 했다. 그 사이가 넓을수록 모험이었다. 그 길에서 어둠과 맞닥뜨리자 우두망찰 서서 혼란으로 범벅된 질문들을 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내 선택은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답을 찾으려고 수시로 멈추어 섰다. 삶의 계획을 세우고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속절없이 무너져 버려지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이정표를 잃고 좌절했던 적이 있다. 먹고 사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고, 답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답을 찾고 있지만, 모르겠다. 세월이 약이라는 옛말이 언제쯤 답을 줄지 궁금하다.


   저녁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었다. 쌀뜨물을 모아 옥상으로 올라가 삶이 시들한 생명들에게 부어 주었다. 내일 아침이면 밥 먹은 생이 시월의 햇살처럼 반짝 빛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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