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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 Jul 27. 2022

배건네 사람 경주 아브지


저녁 어스름 남강 저녁놀이 붉다. 삶도 죽음도 입을 다물 시간, 한쪽이 다른 한쪽

보다 평평하지 않아 제대로 설 수 없었던 배건네 대숲에서 강 건너 진주성을 본다.

장벽 같았던 성, 성벽 위 촉석루가 반짝인다.


올라가지 못해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이곳 건네다. 눈물처럼 흐르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먼길로 떠나 가신 아버지 나이 쯤에, 나는 황소처럼 우직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한다. 한 줌 빛을 모아 조금씩 조금씩 절망을 걷어내 우리 가족을 위해 새벽을 만드셨던 아버지다.


아버지는 새벽 여명 길을 걸어와 금방이라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같다.


“갱주야아, 밤 바람이 춥대이. 어서 집으로 가거레이.”


“아브지, 지금은 봄이라 괘않심더.”


나이 50 너머 낳은 막내딸이 복덩이라고 황소를 몰고 소싸움장에 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가셨던 아버지, 어느 해 가을 개천예술제가 한창일 때였을 것이다. 남강 백사장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아버지는 황소와 함께 소싸움장으로 들어가셨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은 아버지를 찾아 수많은 사람 틈을 비집으며 이리저리 헤매던 6살 어린 경주는 경찰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더 늦은 밤에 싸움 나갔던 황소보다 더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와락 안으셨다.


“갱주야, 아브이가 니 꼼짝말고 있으라 안했나.”


“아브지, ……, 잘못했데이.”


황소 이마와 가슴에 흐른 피처럼 아버지 주름진 눈언저리에도 눈물이 피떡처럼 매

달려 있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았던 것처럼 배건네 사람은 소와 함

께 살고 소와 함께 죽는 것이 팔자라 생각하셨던 아버지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아버지는


“그려, 그려, 내도 안데이. 평생 해 온 일이데이. 우리는 다른 걸 배울 수 없었제.”


아버지는 혼잣말하듯 넋두리하듯 말을 베어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으나 내 아버

지의 아버지의 배건네 삶이 아버지에게 잔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버지 말처럼 아직 밤바람이 춥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2022.05.31., 심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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