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살면서 경험한 카이로의 문화, 일상이야기
나는 2010년 1월에 카이로에 첫발을 디뎠다.
밤에 도착한 탓도 있었겠지만, 처음 만나는 카이로는 무서운 곳이었다.
뜻을 짐작도 할 수 없던 낯선 언어, 우리와는 너무 다른 생김새, 게다가 그 당시만 해도 전통의상인 갈라베야를 입고 다니는 남자들 꽤 많았으니, 마치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스릴러 영화 같았달까..?
얼마나 긴장을 하고, 얼굴과 눈에 힘을 주었던지. 마중을 나오신 분의 말로는 인상을 잔뜩 쓰고 있던 내 얼굴도 못지않게 무서웠다고 한다.
카이로는 하루는 살만한 곳, 하루는 정말 못살겠는 곳으로 시시각각 자신의 얼굴을 바꾸었다.
도시의 모습은 똑같았을텐데, 그 도시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 따라서, 사납게도, 정겹게도, 음흉하게도 바뀌었다.
가로와 세로 구획에 익숙한 나의 공간 감각은 동그란 회전교차로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카이로 도로 구성이 아직도 낯설다. 상점 중심으로 거리를 계산하고 길을 찾는 나의 공간감각은 상점 간판이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온통 황토빛 건물인 카이로에서 힘을 잃는다. 그래서 아직도 거리를 헤매곤 한다.
우리 가족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뉴카이로.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 신도시. 우리나라로 치면 분당이나 일산같은 느낌이다.
“컴파운드”라고 하는 대형 아파트 단지, 그 단지 안에는 쇼핑몰도 있고, 학교들도 있고 시청들도 있어 작은 도시 같은 곳이었다. 이집트에는 2000년대부터, 도시 외곽에 컴파운드로 사는 곳을 구별짓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컴파운드의 출입은 외부인으로부터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놀이터도 풀밭이나 야자수와 같은 조경들도, 선진국에서는 일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특권층에게만 가능 한 것이 개발도상국의 현실이었다.
컴파운드 안에서 살았던 초기 몇년은, 인큐베이터 처럼, 이집트에 안착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카이로는 광역카이로까지 포함해 2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고, 인구 못지않게 차도 많다.
언어 표현력이 좋고, 다소 다혈질인 사람들의 개성을 보여주듯,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마치 대화를 하듯이 클락션을 울린다. 이렇게 물리적인 소음이 없더라도, 외국인들은 낯선 냄새와 공기와 소리에도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해서 피로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나보다 먼저 이집트에 정착했던 외국인 선배는 낯선 외국어를 듣는 것도, 낯선 냄새도, 낯선 공기도 다 적응하는데 신체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라고 조언해주었다. 이런 지혜로운 이웃 덕분이었을까, 우리 가족은 비교적 조용한 주거지역을 안정감 있는 기지로 해서, 차곡차곡 외부로 뻗어 갈 수 있었다.
나는 유명한 유적지를 탐방하는 것보다, 지금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거리에 더 매료된다.
그래서 골목골목의 풍경들을 바라보고, 빼곡한 집들을 바라보며, 저마다 가지고 있을 독특한 스토리들에 대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사실 쉽지는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카이로는 골목의 정취를 느끼며 걷기에는 힘든 곳이다.
우선 걸을 수 있는 인도 자체가 많이 없고, 길고양이들과 들개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랄때도 많다.
동물들에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면, 이번에는 이집트 남성들이 유쾌하지 않은 관심을 보이거나, 자동차가 보행자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층층이 쌓아온 나이테 같은 풍경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파티마 왕조 때 이슬람 문명이 화려하게 꽃피우며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서 위엄을 자랑하던 모습, 오스만 제국의 건축 양식, 현대에 들어와서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까지.
때로는 문명의 중심지이기도 했고, 문명의 교차로 혹은 통로의 역할도 했던 이 거대한 도시가 도서관처럼, 그가 품어왔던 시간과 기억을 나에게 살짝 펼쳐 보여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들때도 있다.
그런 흔적과 기억들이 이 도시에 켜켜이 쌓인 것처럼, 나 역시 이곳에서 나만의 기억을 쌓아가고 있었다.
15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아직도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나.
외국 생활이 현실일수밖에 없는 생생함과 치열함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혹시 이 풍경은 꿈일지도 몰라' 하는 가끔은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나.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고국을 향한 그리움이 시간이 갈 수록 다른 결로 깊어지고 있는 나.
이 글은 나를 위한 위로와 격려의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글이 단지 나만을 위한 글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역시 자신이 머무는 도시에서 느꼈던 사랑과 그리움을 어딘가에 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이로에 호기심을 가진 누군가에게는 흔한 여행 블로그에서 발견할 수 없는, 내가 느낀 이 도시만의 깊고 특별한 매력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명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이곳에서 내가 걸어온 길이 그들에게 또 다른 감정과 상상을 불러일으키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