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흐릴 광장에서 시작된 저항과 그 뒤에 남은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
2011년 1월, 카이로 중심가 따하릴 광장(Tahir Square)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집트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이제 조금 생활이 익숙해지던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웃는 얼굴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신기한 듯 다른 무리의 사진을 찍었고, 대개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행진을 따라가는, 다소 시시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광장의 풍경이 달라졌다.
호기심 가득했던 얼굴의 군중은 성난 얼굴의 군중으로 바뀌었다.
‘어? 심상치 않은데?’라는 찝찝함과 ‘뭐 별일이야 나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을 오가다, 예정되었던 룩소르 여행을 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향했다.
도착한 공항의 항공 스케줄 모니터에는 "결항" 사인만 가득했다. 무슨 근거에서인지, 곧 수습될 거라고 낙관하며 기다리던 사이 통행금지가 선포되었고, 여행객들도 성난 군중으로 변해 항공사 사무소 유리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택시들도 사라지고, 평소의 10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흥정한 끝에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몇 년에 걸친 불안정한 정세의 서막이었다.
현지 친구들로부터 친척이 강도를 당했다거나, 마트에 방화 사건이 있었다거나,집 인근 감옥이 열렸다는 최신 뉴스를 듣기도 하고, 확인 할 수 없는 카더라 통신까지 뉴스의 홍수 속에서 외국인인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며 혼란 속에 빠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심 광장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긴장 속에서 지켜보았다. 화난 군중과 정부의 진압, 그 치열한 대립의 현장이 여과없이 뉴스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총에 맞고 쓰러지는 남자의 모습, 같이 뉴스를 보는 사람들과 지금 내가 본 장면이 실제 장면이 맞는지를 확인하며 눈을 껌뻑 거렸다. 그 영화같은 장면이 남의 일만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살고 있는 나의 현실의 한부분이라는 것이 소름이 돋아 점점 뉴스를 보기가 어려웠다.
당시 나는 임신 7개월이었다. 병원에 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긴장으로 인한 자궁 수축이 계속되었다. 식료품 가게는 절도와 방화로 텅 비었고, 대사관에서는 매일 안전을 점검하는 연락이 왔다. 하루하루 긴장이 쌓여갔다.
광장에는 군중들과 사회활동가들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되고, 산발적인 시위들도 사망자들이 늘어나자, 2011년 후반에는 그래피티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예술가들이 다운타운 곳곳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카이로에서도 예술은 좌절과 저항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황토빛 도시는 금세 거대한 캔버스로 변했고, 그 위에는 분노와 절망, 희망과 저항의 메시지가 빼곡히 채워졌다. 타흐릴 광장과 연결된 무함마드 마흐거리는 특히 강렬했다.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상징, 아랍어 캘리그래피, 소설 속 인물들, 정치 풍자와 혁명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그래피티 작가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 중 한명은 아마르 아보 바크르(Ammar Abo Bakr)이다. 룩소르 대학의 예술대학 교수였던 그는 혁명의 열기 가운데, 카이로 도심으로 달려와서 붓을 들었다. 그의 대표작 '눈물의 벽'은 혁명 당시 목숨을 잃은 자들을 그리는 그래피티로 그들의 외침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우리나라 표현에도 있는 "눈물 젖은 빵"은 인류 보편적인 처절함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한 소년이 눈물이 글썽이는 얼굴로 이집트 샌드위치를 들고 있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즉각적인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년 또한 혁명 당시 목숨을 잃은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
아마르는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호소하는 그래피티를 그렸다면, 그의 동료이기도 한 알라 아와드는(Alaa Awad) 고대 이집트의 예술 스타일을 벽에 풀어내며 은유적인 투쟁을 했다. 그의 "행진하는 여성들"은 전통적인 전사들의 행렬을 통해 이집트 민중의 불굴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룩소르의 라메세움 신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벽화는, 원래 남성 전사들로 가득했던 행렬을 여성들로 대체함으로써 여성의 강인함과 사회적 기여를 새롭게 조명했다. 여성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파피루스로 이 파피루스는 지식을 뜻한다고 한다. 그들은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각기 다른 예술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그래피티는 그들이 겪었던 좌절과 소망의 흔적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무함마드 마흐무드 거리의 벽화들을 볼수는 없다. 도시 환경 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정부와 건물주들은 정화 사업을 진행했다. 수차례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기를 반복하던 그림들은 강화된 규제 앞에서 점점 사라졌다.
치열한 혁명의 흔적들은 지워졌지만, 지금도 그 광장에 가면 그들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빵을 달라! 자유를 달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자!"
카이로에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그래피티를 보며 지구 반대쪽에는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설명을 해주면 좋으련마는, 동시대 이집트 사람들의 사회인식을 말해주고 함께 대화하면 좋았겠다 싶은데, 남아있는 벽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도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덮어버린 듯하다.
지금은 해맑게 웃고 있는 이집트 축구선수 무함마드 살라의 그래피티만 사람들을 맞이할뿐이다.
덧붙임:
타흐릴 광장은 저항의 상징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성희롱과 성폭행 같은 사건들도 존재했다. 스스로를 약자라고 여겼던 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모였던 그곳에 또다른 약자에 대한 힘의 행사가 있었다는 말도 안되는 현실 속에 혁명은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채 상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