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는 잠시 문을 열어 둔 채, 서점 안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햇살이 책장 위로 부드럽게 퍼지자, 윤주는 문득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은 공간 안에 고요함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 속에는 어딘가 모르게 모든 것이 시작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기서, 모든 것이 변할 거야.”
윤주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동안 품어 왔던 꿈이 이제는 손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다시 한번 벅차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불안감도 살며시 밀려들었다. 서점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을까? 이곳에서 진심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윤주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때, 서점 안으로 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책장에 쌓인 먼지들이 흩날리고, 윤주는 그 바람 속에서 뭔가 새로운 시작의 냄새를 맡았다.
“오늘, 누가 올까?”
윤주는 창문을 열고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딸랑—”
서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주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입구 쪽으로 돌렸다. 익숙한 듯한 종소리. 문을 열며 울리는 그 소리가 어쩐지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소리처럼 느껴졌다. 부디 첫 손님이길—윤주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동네에서 가끔 마주치던 직장인이었다. 인사성이 좋고 예의 바른 청년으로 알려진 그였다.
“오늘 제가 첫 손님인가요?”
남자는 서점 안으로 발을 들이며, 살짝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윤주는 약간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첫 손님이세요. 반갑습니다.”
조금은 어색한 말투였지만, 그 순간 윤주는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진짜 서점이 열렸구나,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어쩐지 마음이 얼떨떨했고, 손끝이 조금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떨림과 긴장을 숨기며, 평온한 척, 익숙한 척, 윤주는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점심시간이라 나오신 건가요?”
남자는 서점 안을 둘러보다가, 윤주의 질문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하고요. 퇴근하고 나면 책 볼 시간도 없고, 요즘엔 조용한 곳 찾기도 쉽지 않잖아요.”
남자의 대답에 윤주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하루하루 바쁘게 흘러가지만, 이상하게 책을 보러 서점에 올 땐 마음이 조용해지는 것 같아요. 편안해지고요.”
남자는 윤주의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한쪽 책장 앞에 서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이 책, 여기 있네요. 예전부터 다시 읽고 싶었는데.”
윤주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가 고른 책을 바라보았다. 표지가 낡고 따뜻한 느낌을 풍기는 에세이 한 권이었다. 그 책은 윤주가 서점 한편에 조심스레 진열해 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좋아하세요, 이 작가?”
남자가 묻자, 윤주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용히 대답했다.
“네. 이 책, 제가 스무 살쯤에 처음 읽었거든요. 그때 참 많이 위로가 됐어요.”
그 말에 남자는 천천히 책을 펼쳐보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 저한테도 그런 책이 필요한가 봐요. 요즘은, 작은 문장 하나에도 오래 머물게 되더라고요.”
그 말이 어쩐지 윤주의 가슴속에 잔잔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이 서점이 누군가에게는 숨 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대화를 끝으로 남자는 서서 조심스럽게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하나라도 남기지 않고 마음에 담고 싶다는 듯 눈을 떼지 못하고 읽다가 윤주에게 남자가 불쑥 물었다.
"이 서점, 이름이 뭐예요?"
윤주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기억의 서재요. 책들 하나하나에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걸 다시 꺼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에요."
"... 기억의 서재라.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남자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는 어딘가 아련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윤주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기억들 중에… 오늘 이 순간도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날, 작은 서점 안에서 피어난 첫 기억은 그렇게 조용히, 따뜻하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