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스물여덟의 새해 첫날, 버스를 타고 전북 부안에 갔다. 처음 가는 곳인데, 스물일곱에 3개월 다닌 학원에서 만난 동갑의 친구집이다. 원불교 정녀가 되려던 친구는 봄부터 학원에 다녔다고 했다. 그때 스물일곱의 여자를 입시 학원에서 만나기는 아주 드문 일이어서 금방 친해졌다. 부산에서 부안까지 길이 얼만가, 사무실에서 만나던 地名이었다.
그곳을 가는 것은 나름 도전이었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조방 앞에서 전주행 버스롤 타고 두어 번 더 버스를 바꿔 타고 찾아간 부안의 친구 집은 하얀 신세계였다. 할머니는 손녀 친구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짧은 겨울 해는 금방 밤을 불러왔고, 문밖에는 부산에선 상상도 못 할 만큼 눈이 내렸다. 발이 시린 것도, 남의 집이라는 것도 잊고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뒤를 돌아보고 놀랐다. 거짓말처럼 눈사람을 덮어버린 雪ㆍ雪ㆍ雪.
할머니는 내가 신기한 듯 보시다가 춥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하셨다. 몸은 아랫목에, 마음은 발 시린 강아지마냥 눈밭을 뛰어다녔다.
친구 부모님은 군산에서 가게를 하신다고 할머니 혼자 사셨다. 새해 첫날 찾아간 나를 손녀를 보듯 잘해주셨다. 가져간 내복에 얼굴을 묻고 좋아하던 할머니를 보자, 넓은 집에 오도카니 앉았을 날들이 떠올랐다. 할머니 옆에 이불을 펴고 누웠는데, 군불로 데워진 방바닥과 문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격렬히 싸웠다. 조금 있다가 곧 잠이 들었지만, 버스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국토를 오간 피로는 금방 풀렸다. 다음 날 아침, '타닥타닥' 소리를 따라 부엌으로 가니, 시커먼 가마솥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커다란 도마에는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를 손질 중이었다. 밥상에는 생선찌개와
또 다른 생선구이와 서너 가지 김치가 있었다. 생선찌개는 달았고, 김치는 경상도와 다른 맛이었 다. 설거지를 하는데. 친구가 말하던 사촌이 왔다. 사촌은 집에서 멀지 않은 채석강으로 데려다주었다. 중국의 적벽루를 닮았다던 채석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바다 근처에서 살아도 바다를 아우르는 그 무엇도 본 적 없었는데, 채석강은 너른 바위와 책을 차곡차곡 쌓은 듯, 태고의 신비를 품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던 서해안은 그렇게 나를 감동시켰다. 사촌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그때, 알았다. 친구가 왜 자신의 집으로 나를 보냈는지. 흘리듯 결혼 안 한 사촌이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던 말을.
많은 청년들이 도시로 나가는 80년대 말에 도시에 서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정착하기로 했다는 말은 낯선 나라 이야기였다.
셋째 날 아침, 먼 길을 떠날 손녀의 친구에게 먹일 밥을 짓는 할머니의 얼굴은 편안했다. 조그마한 할머니를 안아드리고 부안 정류소에서 목포행 버스를 탔다. 그때 부안은 自然이 그대로 있었다. 버스가 남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달라지던 말맛을 느끼며 목포에 닿았다.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꼭 만나러 가라고 했던 목포. 초행길의 목포는 지금도 좋은 이미지다. 항구도시도 그렇지만, 대학에 근무하던 친구가 자신의 근무처를 안내해 주었고, 목포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항구 도시 특유의 분위기에다 부산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친구가 사준 닭발은 처음 먹어본 음식이었다. 그 친구는 군산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녀와 나, 부산에 있는 친구는 그때의 이십 대 후반 여자들과 생각이 조금 달랐다. 안정보다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해내고 싶어 하는.
목포역에서 부산역으로 오는 밤기차를 탔다.
窓 너머로 보이는 까맣던 세상이, 더 새까맣다가 부얘지고 발그스름해질 때 부산역에 닿았다.
익숙한 공기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급하게 머리를 감고 출근을 서둘렀다.
♤ 계산이 어긋나다
상업 학교를 다녔지만, 상업 과목은 물 위의 기름이었다. 기본 급수는 누구보다 빨리 땄지만,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성적이라니. 학년에 맞는 급수를 따려면 학원에 다녀야 했다. 열다섯, 여섯의 계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빨리 돈을 벌어서 집에서 독립하는 게 목표였지만, 세상은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졸업급수를 못 딴 나는 3교대하는 직장을 다녔지만, 초저녁 잠을 어쩔 수가 없어서 5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때 집안의 오빠가 한자를 웬만큼 알고 타자에 능한 관공서 사무직을 소개했다. 다람쥐가 굴려도 그렇게 빨리 쳇바퀴를 굴리진 못하리.
한풀이하듯 수동타자기 자판을 내리치던 두 손은 비가 오면 아렸다. 고생은 아니지만, 젊어서 거듭된 동작은 관절에 무리다.
♤ 나와의 약속
중 2 때 수학쌤이던 담임은, 몇몇의 수학 성적이 나쁘다고 '평균을 깎아먹는 것들'이란 말을 자주 했다. 벼락치기로 수학 공부를 한다고 좋은 점수가 나올 리는 없지만, 담임이 내뱉는 말이 싫어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길이었다. 대신동을 주름잡던 바바리맨이 아침부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놀라 소리를 지르며 학교 쪽으로 뛰어가다가, 방언처럼 터져 나온 말은
"나는 평생을 공부할 거야."
였다. 가끔 그 약속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하는 일은 주위를 돌아본다고 어긋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불에 덴 듯, 미친년 널 뛰듯 일을 벌였다.
♤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겨우, 정말, 간신히 나를 받아주는 학교는 양정의 부산여자전문대학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신입생이 되었다. 자주 연락하던 친구는 이웃 도시에서 수학 교사였고, 청하면 도움을 줄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몇 명 있었지만, 도움을 받으면 약속을 못 지킬 듯했다. 그 약속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3월이 되어 입학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알렸는데, 예상한 반응이었다. 엄마는
"오빠도 안 간 대학을 니가 간다고~~~"
하며 어이없어했다. 주사위는 하늘 높이 던져졌다. 무엇이든 시작을 잘하지 않지만, 시작한 건 꼭 마무리를 했다. 그 길은 예상했지 않은가.
♤ 견뎌내는 힘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개밥에 도토리였다.
집에서는 그렇잖아도 노처녀가 될 나이에 공부라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다.
사무실에선 과장님과 계장님까지 승낙이 떨어졌어도,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건 무리였다. 그런다고 일을 미루지 않는 줄 뻔히 알던 실장은 일을 하다 부딪치면 악을 써듯이 소릴 질렀다.
"학교, 가지~~~마."
사무실 동생들은 다섯 시가 가까우면 괜히 움츠러들었다. 실장님은 집안 문제로 머리가 아팠었는데, 연이어 떨어지던 진급 시험으로 신경이 날카로웠다.
"괜찮아, 실장님이 짜증이 나서 그러니 마무리 잘하고 퇴근해라. 좋은 시간 돼라."
하며 동생들을 안심시키고 이른 퇴근을 했다.
그럴 때면 나란히 붙은 사무실 직원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저, 먼저 퇴근합니다."
하고는 사무실을 나와 버스에 올랐다.
3월이 가고, 4월에도 실장은 소릴 질렀지만, 그러려니 했다. 직원들은 나를 악바리라 불렀다. 그런데, 툭하면 굶던 저녁으로 빈혈이 친구처럼 찾아왔다. 수업을 마치고 터덜터덜 골목을 지나 계단을 가쁘게 올라 집으로 가면, 반기는 건 시커먼 어둠이었다. 그럼에도 공부는 量이 많았지만, 재밌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쭉쭉 빨아들 이던 시간들. 장학금을 받았다. 집과 사무실에 장학금을 풀어놓고는, 나에게 선물한 와인색 주름치마는 지금도 즐겨 입는다.
♤ 전공 선택은 Good
나의 전공은 [도서관학]이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 도서관에서 하는 일과 비슷했고, 나이가 들면
주제전문사서가 되고 싶었다. 사회 과목을 좋아해 서 그쪽의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도 않았고, 세상도 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3학기의 수업은 너무 짧았다. 전문대학은 4학기에 모든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중에도 4학기에 실습이라니. 다행히 하는 일이 도서관 업무와 비슷해서 시간을 많이 아꼈지만, 신문사와 근처 관공서로 많이 다녔다.
[도서관학]을 배운 은사님 댁에 낮시간에 학교를 다닌 또래 친구와 놀러 간 적이 있다.
"누구든 학위를 받아 오면 졸업생으로 내 시간이라 도 내줄 거니까 학위를 꼭 받아야 돼. 알았지"
라고 하셨다. 그 교수님은 조각가인 남편이 만든 도자기 冊을 한 권씩 주시며,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서른이 다 된 학생이라 더 눈에 띄었고,
그만큼 열심이었다. 그 교수님은 자신이 도서관인
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수업 중에도 남편의 유학 때 동행한 프랑스의 도서관과 일본의 소도시 도서관에 대한 슬라이드를 많이 보여주셨다. 일본의 도서관은 편의점처럼 많고, 누구든지 서가에서 직접 책을 꺼내서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선명한 슬라이드 색깔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교수님 수업 중에도, 학과장님의 특강에서도 인상적인 말은, 인도의 도서관 학자이던 랑가나단의 도서관 3대 법칙이다. 지금은 AI가
안내하며 5법칙이라고 나오지만, 내 귀에 콕 박힌
도서관 3대 법칙은
1) 알맞은 자료를
2) 알맞은 시간에
3) 알맞은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내가 10년을 다녔던 관공서에서의 일이 그랬다.
신속, 정확하게, 그 기록을 안전하게 열람하게 하는 일이 나의 일이었다. 그 열람을 위해서 타자기를 꼭꼭 눌렀던 나는, 圖書館人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살고 있다.
♤ 부산 북두칠성 도서관
얼마 전 신문을 보다 만난 부산 북항의 북두칠성
도서관은 그 은사님이 말씀하신 도서관이었다.
접근성도, 자료도, 쾌적함도 좋은 도ㆍ서ㆍ관.
나는 그 도서관에 가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부산 북항 북두칠성도서관은, 부산역 뒤편에 있는 마리나 7 건물의 1층에 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광주로, 사이버대학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그리고 50대 중반에 대학원을 졸업한 이십 대 후반의 악바리는, 또 다른 쓸모로 살아왔다. 나의 엄마가 말했던 나이가 한 살 먹을 때마다 계급은 못 올렸지만, 나름 지혜롭고 열심히 살았다.
알맞은 시간에, 알맞은 일을, 알맞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