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엄마가 생각나는 겨울 아침
새벽 4시 반이다.
더 누워있고 싶은 데도, 눈이 떠진다.
도로를 지나는 육중한 청소차 소리가 겨울 아침을 연다. 이불에서 빠져나오기가 싫어서 밍기적거리 지만, 생각은 가스불을 켜고 있다.
새벽 4~5시 기상은 오래된 습관이다.
윗 지방의 김장이 끝난 12월이면 엄마는 바빴다.
엄마는 산더미 같은 옷을 입고 칼바람에다 난장의 찬기를 온몸으로 맞서러 갔지만, 직업정신은 투철했다.
엄마는 묵직하고 고른 무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사려고 을숙도가 있는 하단에 가셨다. 을숙도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라 무 맛도 좋지만, 크기도 골랐다. 맛은 간간한 데다, 칼을 대면 잘 익은 수박처럼 '쩍'소리를 내며 갈라지던 무는 물기가 많았고, 배보다 훨씬 맛있었다.
우리 가족은 겨울에 무를 자주 먹었다. 엄마는 무를 보는 눈이 매서웠는데, 칼로 무를 살짝 쳐보고는
"바람 들었다. 대롱이다."
하며, 무를 구분했다. 바람이 든 무는 연뿌리처럼 구멍이 났거나, 퍼석퍼석했다. 대롱 무는 중간이 '뻥' 뚫려 있었다. 엄마는 팔다가 남은 대롱 무를 가져오셨다.
엄마는 무를 사러 대티고개를 넘나들었다.
대신동에서 대티고개를 넘어 하단 포구까지 가는 길은 만만찮은 길이다. 그 길을 무거운 무를 이고 대티고개를 넘었던 엄마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일찍 일어나서 엄마를 따라 가고 싶었지만, 그곳엔 데려가지 않았다. 그때 하단 포구는 휑했고, 을숙도 무는 귀한 데다, 배에서 내린 무를 사고파는 걸 어린 내가 기다리는 건 무리였다.
배추를 사러 갈 때는, 가끔 나를 데려가셨다. 지금은 광복동 롯데백화점이지만, 그때는 시청과 경찰청이 있던 옆에 청과시장이 있었다. 나에게 그곳은 춥고 멀었다. 엄마는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충무동을 지나고, 자갈치를 지나서 영도 다리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점바치 집이 늘어섰던 다리 입구와 계단에는 場이라고 할 수 없는 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미역국에 넣은 새알 옹심이 떡국을 사주셨다. 새벽에 나오면서 속이 허했던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옹심이 떡국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눈에 막내를 한가득 담고서. 그리곤 나를 볼 때와는 다른 얼굴로 배추도, 푸성귀 도 흥정하던 엄마였다.
누군가가 그랬다. '엄마는 종신직'이라고.
엄마가 가신 지 30 년이 지나 이제 편안히 쉬셔야 하는데도, 막내는 무시로 엄마를 부른다.
엄마는 대책 없는 막내가 서른이 되자 걱정이 컸다. 서른 하나에 이직한 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다가 채워지지 않는 지갑을 탓하며 다시 공직으로 돌아가던 딸을 쳐다봐야 했던 마음은 어땠을까? 나도 세태를 따르자면 이제 30대가 된 딸을 걱정하 기는 그렇다. 그런데, 엄마는 30년 전에 감당 안 되
는 딸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사람은 그 나이를 살아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하는데, 나의 늦은 결혼은 엄마에게 큰 짐이었다.
"아, 니가 뭐가 못 나서 짝이 없냐?"
라고 했지만, 엄마와 나는 알고 있었다. 당사주冊에
있던 그림을. 일찍 짝을 만나면 동티가 난다는데,
일하고, 공부하면서 액땜을 했달까.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자신의 길을 막는다고 아침마다 엄포를 놓았다.
그런 엄마 딸이어서는 아니다. 나는 순전히 내 욕심 으로 진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엄마랑 못 해본 삼 대의 외출을 하고 싶은 것이다. 딸은 얼굴도 안 보여주고 떠난 외할머니가 싫다고 했지만, 성정은 내 엄마를 쏙 빼닮았다. 기준도 높고 반듯해서 고맙고, 즐거울 때가 많지만, 녹록지는 않다.
이제 엄마를 그만 부르고 싶다.
유독 12월에 이사를 많이 다니다, 살고 싶지 않았 던 아파트에 6년 전에 안착했다. 팔릴 듯 팔리지 않던 빌라를 본 사람이 집을 보러 와서 한 달 만에 집을 비워달라면서, 속으론 바로 나가도 좋다는 눈치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단독주택 찾기라니. 보름 정도 집을 보러 다니다, 꾀가 날쯤이면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막내가 살 집을 빨리 찾아주세요."
하면 거짓말처럼 집이 나타났다. 허름한 단독주택 이라 비어있던 집도 있었고, 나처럼 집만 나가면 언제든 집을 비워줄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 고마움을 엄마에게 드렸다. 아파트도 그렇게 오게 되었는데, 위치도, 방위도 좋다. 엄마가 장사하시던 시장도 가깝고. 아는 길도 그렇고.
정말 이제는 엄마를 쉬게 하고 싶은데, 엄마는 職이 종신직이라, 나의 생애에는 계속 찾을 거다.
좋은 일에도, 고마운 일에도 부르고, 힘이 드는 일은 보고만 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네요.
오늘은 귀한 을숙도 무시도 먹고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