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ㅡ 변명을 싫어하는 내가

by 민교



'裸木의 作家' 박완서 선생님을 뵌 적이 있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아이들과 갔던 도자기 공방에서 엄마들을 위한 자리였다.


겨울나무가 잎을 머금고 있을 때와는 다르듯이, 자그마한 몸피에 놀랐다. 잎을 다 떨구고 고갱이만 남았다고 할까. 형형한 눈빛이 가끔 생각난다.

선생님은 그 '형극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무엇이든 쓰는 거야."

하시며, 나의 손을 잡아주셨다. 따스했던 체온이 생각날 때면 글이 쓰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이들은 다 청소를 하고 있었고, 나는 담임선생님의 지시로 반 아이들이 해오지 않은 글 숙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교실 앞에서 학급문집을 다듬고 계셨다.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잡아당 기더니, 사정없이 빰을 후려쳤다.

아픔보다 분했다. 분명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계셨고, 아이들과 다 합의된 것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소릴 질렀다. 무지막지한 야만에 대해서.



칠십 년대 사학재단의 높은 자리였던 그 국어선생 은 자신의 자리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떤 기분이었는지 몰라도 남의 교실에 들어와 행패를 부린 건, 자갈치 시장의 왈패와 뭐가 다른가.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굉장히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셨지만, 그 왈패는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듯 뒷문으로 나가서 복도를 어슬렁거렸겠지.



학급문집은 잘 만들어졌고, 우리는 3학년이 되고, 졸업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나중에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셨다. 왈패를 길에서 부딪쳤는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 특유의 뻔뻔한 기름진 얼굴이었지만, 비껴가지 않은 세월은 어깨가 축 늘어지고 다리를 절뚝였다. 좋아하던 국어과목과 문학소녀였던 감성을 꾹꾹 접게 했던 분함으로 글을 쓴다는 생각을 접고 살았다.



둘째 언니는 文才를 떨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더 나의 글쓰기는 서랍 속의 먼지였지만, 중년을 지나며 서랍을 가끔 열어보곤 했다. 글을 쓸 때마다 다 낫지 않은 상처가 덧난 듯해서 어떤 글은 접고 싶었다.



브런치를 알고 처음 연재한 <다리 위에서>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적혔는데, 손의 아픔과 둘째 언니가 큰 스트레스여서 글을 접으려고 했었다. 그랬는데, 연재를 계속해서 독자들과 한 약속을 지키라는 말에 <다리 위에서>를 몇 회 더 쓰려고 한다.

어떻게 열어갈지, 몇 회를 더 이을지 나도 모른다. 소설가 이응준의 말처럼 <글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쓰진다>는 말에 늘 고개를 끄덕인다.

글쓰기는 항상 긴장되고 아리지만,

<다리 위에서>에 오셔서 잠시 머물다 가시라고 권한다.



푸른 뱀의 해가 서너 시간 후이면, 붉은 말에게

왕관을 물려주겠지. 나도, 브런치 작가님들도

좋은 글 많이 씁시다. 모두 건강하고 복된 새해

맞으세요. 감사합니다.



새해 기다리면서, 감사한 2025년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강풍주의보 내린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