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메이트(1)

ㅡ 가장 든든한 메이트는 나

by 민교


친구가 보낸 카톡은, 소설 雪國의 한 페이지였다.

남편과 패키지로 간 여행이었는데, 일행을 쫓아 다니느라 여행의 참맛을 못 느꼈다고 했다.

친구는 여행 전에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기대가 컸었다. 남편 지인의 부인들은 동갑이었 지만, 공감대가 달라서 이야기가 겉돌아 기대한 만큼의 여행은 아니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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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년간 다녔던 상담실에는 여러 사연의 내담자가 많았다. 동그란 얼굴의 내담자는, 일곱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의 엄마였다. 라포 형성이 되고도 몇 회가 지나서였다.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친정엄 마와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남동생과 자신을 차별하는 게 싫어서 그랬다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집에서 가내수공업을 하는 부모님은 외식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주 더운 날에 시장 중국 집에짜장면을 먹고 오는 길이었다. 그늘 없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아빠가 사준 아이스크림이 줄줄 녹아내렸다. 마음이 급했던 엄마가 말할 틈도 없이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고, 딸은 놀라서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렸다. 그게 서러워 울면서 집에 갔다는 이야기였다. 내담자가 말한 시장과 언덕길은 나도 아는 곳이라 귀를 쫑긋했다. 그때부터 엄마에게 새초롬하게 굴다가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까지 하니, 친정에 가는 게 더 서먹하다는 것이다.

내담자는 답답했겠지만, 나는 결혼한 다음 해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랑 어디든 갈 수 있는 내담자가 부러웠다. 내담자는 딸이 그때의 자신과 같은 나이라 가끔 외할머니 집에 가자고 했지만, 특별한 일이 없이친정에 안 간다고 했다.

"오래 답답하셨죠. 나는 그 동네를 여러 번 가봐서 조그만 아이가 다니기가 힘든 걸 알아요. 모처럼 외식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는 게 얼마나 신났을 까. 그늘도 없는 언덕을 오르고도 한참을 가야 집인데, 줄줄 흐르는 아이스크림을 본 엄마가 급한 마음에 아이스크림을 먹었지, 빼앗아 먹었을까요.

급하게 간다고 아무 준비도 못 했겠는데."

하자, 배시시 웃었다.

"엄마하고 가까운 데 여행을 가보세요. 이야기를 안 해도 딸이 할머니 손도 잡고, 엄마 손잡으면 저절로 이야기가 나와요. 엄마가 기다리시는지도 모르잖아."

하면서 숙제를 내주었다.

일주일 후에 만난 내담자는, 환하게 웃었다.

"엄마랑 여행 다녀왔나 보다. 지난주보다 얼굴이

좋아요."

하자, 자랑을 하려는지

"상담실 나가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했어요.

엄마 전화가 올 줄 알았는지, 아~들 데꼬 온나.

같이 밥묵자 하는 데~~~ 마음이 다 풀려서~

엄마. 유치원에 가서 아~~들 데꼬 갈 게."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고 했다.

아버지는 바쁜지 힐끗 쳐다보다가, 포장해 놓은

물건을 차에 실으며

"너거끼리 밥 무라. 나는 이거 갖다주고 올란다."

하시며, 차를 타고 가시고, 엄마가

"우리 마 외식할까. 인자 아부지도 나가고 나도

편하게 무꼬 싶다. 하시는 바람에 시장에 갔어요. 딸이 외할머니 손을 잡아 흔드는데, 엄마가 저리 잘 웃던 사람인가?싶을 만큼 기분이 좋았어요. 전화 한 번에 마음을 다 푸는 엄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선생님. 그날 시장에 있는 煎이란 전은 다 사고, 딸이 좋아하는 짜장면도 먹고, 갈치도 사고, 아들 운동화도 사고, 커피도 마셨어요. 엄마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이런 데 첨 와본다.' 는 말에 얼마나 미안하던지. 다음에는 엄마가 기장에 멸치 사러 가자고 했어요. 앞집 아줌마가 딸들하고 가는 거 부러웠다면서."

그렇게 내담자는 엄마랑 화해를 했다. 혼자라고 부득부득 우겼던 일곱 살의 고집은 여행이란 단어로 무장해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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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하고 1년 반쯤 되었을 때, 엄마가 돌아가 셨다. 그때 가시면서도 자신의 길이 늦어졌다고 혼을 내던 엄마가 나의 여행메이트였었나?

스물셋이던 나는 엄마가 장사하시던 시장 상인 들의 야유회에 따라갔었다. 합천 해인사로 갔던 야유회에서 활기가 넘치던 엄마의 모습을 봤다. 평소에는 말도 잘 안 했었는데, 풍류는 있었다.

詩 한 수를 읊고는 수줍은 듯 웃으시던 엄마는, 나의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배추, 무, 당근 등을 팔면서도 구색을 갖춰 야 손님을 끈다며 자주 장사 밑천 걱정을 했다. 거기다 아가리 벌리는 딸들의 가방과 집안 살림을 걱정하면서도 계절마다 이어지던 야유회는 빠지지 않았다. 아마 해외여행이 있었다면, 참빗으로 함함히 빗은 쪽머리로 사진을 찍었으리라.

옥색저고리가 고왔던 엄마는 내게 떠남의 유전자를 남겼다.


나는 혼자 잘 돌아다니지만, 겁이 많아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엔 집에 돌아와야 한다. 새벽은 아침을 품고 있어 겁쟁이에게 좋은 시간이다. 요즘은 前과 달리 두들겨 보고, 혹시 모를 위험을 염려해서 활동 반경이 점점 좁아지지만, 여행메이트로서 나는 퍽 성실하다. 호기심은 있되 과하지 않게, 가고 싶은 리스트를 현실의 벽으로 지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한 달에 서너 번은 네이버 길 찾기에서 헤맨다. 거리와 시간과 교통편을 따지고 오지 않는 버스를 생각하며 나서기를 그만 두지만, 마음은 늘 여행 중이다.


여행은 함께 하는 메이트가 중요하다. 어쩌면 여행의 성패를 가르는 첫째 요소가 아닐까.

머묾과 떠남을 조절할 수 있는 나는,

나에게 꽤 괜찮은 여행메이트다.


안 간 곳도, 못 간 곳도 수없이 많.

새해가 되었으니 안전하고 편하게 새로운 여행지를 뚜벅뚜벅 걷는 날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어디든 나서야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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