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父子는 닮았다
(첫째 날에)
우리 집 남자들은 밖에 나가는 걸 무지 싫어한다.
무조건 안 나가는 건 아니다. 목적 없이 나가기가 싫다는 건데, 꼭 목적이 있어야 나가나. 집을 나서 면 필요가 생기기도 하는 거지, 없는 목적 찾다가 바깥세상은 구경이나 할는지.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는 거지, 다리 떨릴 때 가는 게 아니라니까.
대학 1학년 딸이 친구들과 대만 여행을 갔다. 부럽고 대견해서 맘껏 응원해 줬는데, 뭔가 아쉽다. 나도 가고 싶은데, 저 남자들이랑 같이 갈까? 열심히 블로그를 뒤졌더니 '영주 무섬마을'이 불렀다. 남편의 의향을 물었더니
"딸이 외국 갔는데, 집은 누가 지키노?"
한다. 한 60%의 가능성이 보인다. 무섬마을의
그 다리에 맘이 동했나 보다.
아들에게 톡을 했더니
"또 걷나?그라면 안 간다."
라고 했다.
낸들 알겠나, 초행길인데. 걷는 지 아닌지는 가봐야 안다. 경북 북부에 있는 영주는 부석사가 있어 많이 들어봤지만, 무섬마을은 처음이었다.
"버스만 3시간을 탄단다. 택시도 타고~"
반응이 별로다.
"너 그날 가는 거 맞제?표 사놓을 거니까 시간 맞춰서 꼭 와야 된다. 알았제."
거듭 당부를 하자, 짜증을 내었다.
토요일 오후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은 붐볐다.
3시 반에 영주로 가는 버스는 하나, 둘 승객들을 태우는데, 아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남편이 짜증 난 소리로
"거 봐라. 야는 오지를 않노."
하는데, 홀쭉한 얼굴의 아들이 나타났다.
행색을 보니 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약속이라 어쩔 수는 없고 나름대로 저울질하다 늦게 온 것이다. "버스 떠날라. 빨리 타라."
하고는 좌석에 앉았다. 목적지가 추운 곳이라 그런가. 짜증이 날 만큼 온도가 높았다. 겉옷을 벗고 한숨 돌리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했니더'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10여 분쯤 갔을 때였다. 기사님이 어떤 아주머니에게 어디 갔다 오시냐고 묻자,
"어데예, 집에 가니더."
라 하신다.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기사님과 그 아주 머니와 또 다른 아주머니의 대화는 끊일 듯 끊어지지 않았다. 기사님과 인사하던 아주머니가 다른 아주머니의 커다란 보퉁이를 조금 들어준 인사로 시작한 대화였다. 기사님이 이야기를 잠깐 거들다가 슬그머니 빠지시자, 나란히 앉은 아주머니들의 본격적인 사돈 맺기가 시작되었다. 만난 지 20분도 안 된 두 사람은 어디에 사는 누구는 건너뛰고, 아들 엄마와 딸 엄마가 되어 서로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었다. 저러다 사돈이 될지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사이 우리 집의 두 남자는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려도 목 단추 하나 안 풀고 다소곳이 앉아서 졸 뿐이었다. 父子 아니랄까 봐, 미련하기는.
두 아주머니가 사돈을 맺으려는데, 버스가 안동에 닿았다. 그대로 막이 내린 듯 이야기는 멈추었고, 먼저 탄 아주머니가 안동에서 내리는 아주머니의 보퉁이를 들어주셨다. 기사님이 안동에서 조금 쉬었다 가신다는데, 나는 버스에서 내려 블로그 에서 본 무섬마을의 숙소에 전화를 했다. 버스가 안동에 왔는데, 어떻게 가는지. 영주 터미널 한 구역 전에 '꽃동산'에 내리면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버스가 다시 움직인다. 안동에서 버스를 타신 아주머니들의 조용한 '했니껴'가 공기를 바꾸었다. 버스는 영주에 닿았고, 간판은 ○○○ 꽃동산, 꽃동산 ○○ 등 온통 꽃동산이었다.
두 남자는 배가 고파서 한 걸음도 못 걷겠다고 떼를 썼다. 그때 눈에 띈 ○○○ 꽃동산 식당에서 국밥을 시켰다. 펄펄 끓는 소고기 국밥이 뚝배기에 가득했고, 알맞게 맛이 든 배추김치는 손으로 쭉쭉 찢어서 가져왔다. 생된장과 풋고추까지 곁들이니 최고의 밥상이다. 후식으로 내온 밀감도 달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장님께 비닐봉지를 얻어서 남은 김치와 전을 담았다. 계산을 하고 식당 옆에 있던 마트에서 소주와 밀감과 빵을 사고, 돼지고기 편육도 샀다. 남편과 아들은 금방 밥을 먹고 나와서 무얼 저리 사나 싶은지, 눈이 커졌다.
이 남자들아. 거기는 가게가 없단 말이야.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은 그리 멀진 않았지만, 어둠은 마을을 삼켰다. 군데군데 숙소를 알리는 불이 켜져 있고, 개들이 길손을 반겼다. 다행히 우리가 묵을 숙소는 길가에 있었다. 대문 옆에 잇댄 방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는데, 소 외양간을 고친 방이라고 했다. 본채와 떨어져서 더 좋았고, 커다란 TV가 있었다. 가져간 소주와 전과 밀감을 꺼내는 데, 아들이 구석에서 床을 찾아온다. 생각 없이 켠 TV에서 곧 한일전이 시작된다고 했다. 父子는 죽이 잘 맞아 소주는 금방 동이 났다. 황토방은 이불 없이도 머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스르륵 잠이 들게 한다. 그럼, 오늘 나는 두 남자와 여행 온다고 피곤했다고 ~~~ 하는데, 아들이 고함을 지른다.
"아, 그걸 못 넣고~~~"
남편도 거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둘째 날에)
눈에 가득히 들어오던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가르며 아침이 오고 있었다. 두 남자의 머리 맡에는 먹다 남긴 煎과 밀감 껍질이 韓日戰이 치열했음을 알려주었다.
어디선가 물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마을을 감아 흐르는 내성천은, 서둘지 않고 조용히 좁고 기다란 외나무다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아들은 낯선 다리가 신기했던지 한참 서 있었다. 다리를 천천히 걸어갔다가, 돌아올 때는 토끼마냥 깡충깡충 뛰었다. 이른 아침이라 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아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런 아들을 따라 남편도 나도 걸었다. 오래 비가 오지 않은 듯 얕은 물은 오래오래 흘렀으리라.
버스를 타고 浮石寺에 갔다. 아들은 부석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무량수전의 기둥을 배흘림기둥 이라고 했다. 무량수전은 1962년에 국보 제18 호로 지정되었고,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는 201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교과서에서 보던 목조건축을 직접 보고는, 떨림과 놀라움과 고마움에 찡해졌다. 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운데가 불룩한 것은, 오랜 세월 무량수전을 떠받쳐온 고려의 자랑이다.
국가유산청에 의하면 <무량수전 기둥을 배흘림 으로 만든 것은 일자로 생긴 기둥은 멀리서 봤을 때, 안쪽으로 굽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방지하여 건물을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선조들의 지혜> 라고 한다.
배흘림기둥이란 말은 前 국립박물관장이었던
최순우 박사가 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알게 되었다는 아들은, 그 기둥을 눈으로 본 것 만으로도 부모를 따라 오기를 잘했다고 했다. 그럼, 여행의 목적은 현장성과 떨림이라니까.
아들은 어릴 때 불교유치원에 다녀서 절이 낯설지
않았다. 5학년때 친구를 따라 포교원의 여름캠프를 갔던 합천 해인사 어느 암자에서 삼천배를 하고 온 적도 있다. 그때가 생각난 듯이 절집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절문 밖으로 나왔다.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아는 지식을 랩 하듯 쏟아내었다. 그 얼굴은 중학교 때 학교를 갔다 와서 간식을 먹으며 미주알고주알 하던 얼굴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멋쩍은 듯 웃더니 집에 가자고 했다. 남편도 때를 기다린 듯 집에 가자는 말은 연료가 떨어졌다는 말이었다. 절집에서 조금 떨어진 식당에 갔다. 시래기국은 걸쭉했고, 더덕무침은 향이 진했다. 갖가지 나물까지 배불리 먹으니,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시외버스를 타러 榮州 시내로 오는 버스를 탔다.
우리 지명에 州가 붙는 곳은 주변에 널따란 고을이 많다는 말인데, 영주 시내에는 근대식 건물이 많았다. 영주는 처음 갔지만, 낯설지 않은 것은 어릴 적부터 봐온 부산의 오래된 건축물과 영주의 건축물이 같은 시대의 건축이어서 그랬다. 아들은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 본관과 영주의 건축물이 동시대 건축이라면서 짧았지만 알찬 여행이라는 말을 했다. 남편은 아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흐뭇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이 가까울수록 짧은 겨울 해는 산너머로 숨바꼭질을 해댔고,
골이 깊은 곳에는 산 그림자도 머물다 갔다.
시외버스는 노포동 종합터미널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간이식당에서 라면과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부자의 까맣고 숱 많은 머리카락이 닮았다. 지하철을 먼저 내리는 아들이
"엄마, 아빠. 오늘 좋았어요. 헤헤~~~"
하는데, 그 얼굴이 참 해맑았다.
※ 국가유산청의 글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