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다

by 민교

아무래도 다는 게 낫겠다. CC TV 말이다.

컴퓨터 작업을 하다 '푸드덕' 소리에 창문 밖을 바라봤더니, 참새 한 마리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살금살금 마당으로 나간다는 게 현관문 여닫는 소리가 컸던지, 그만 앞집 지붕으로 날아올랐다. 약이 오른다. 저 녀석은 언제부턴가 집을 돌고 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 뿐인데, 인기척만 나면 날갯짓부터 해대니 기가 막힌다..



며칠 전부터 아끼는 화분에 깃털 서너 개가 떨어져 있었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깃털은 아무리 추리해도 분명 참새였다. 그때부터 유심히 깃털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녀석 중에서 우리 집에서 놀다 간 녀석을 찾을 수는 없었다.


오후가 한가했던 날, 무심히 창밖을 보다가 날아가던 녀석 중에서 한 녀석이 집으로 오는 걸 봤었다. 그 이후로 깃털이 하나 둘 떨어져 있는 것은, 필시 그 녀석이다. 녀석이 좋아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지친 날개를 쉬러 오는 건지, 아니면 예전에 좋아하던 무엇이 있었던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단서는 깃털뿐이다.



복잡한 길을 조금 벗어난 동네에는 유난히 참새가 많다. 오종종 걸어가고, 깨금 발을 뛰듯 사뿐 날아오르고, 푸드덕 날아간다.

그 앙증맞은 몸매로, 짧은 다리로, 힘찬 날갯짓으로 창공을 날아다니는 그들이 부럽다.

'찍' 하면서 날아오르는 몸짓도 예뻤고, 춤을 추듯이 걸을 때는 발끝에 힘을 주기도 했다.



이 나무, 저 나무 거침없이 날아다닐 때는 그들을 쫓아서 날고 싶었다. 친하고 싶고, 예뻐서 오래 쳐다보고 싶을 뿐인데, 녀석들은 한 번도, 아니 절대로 곁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앞집에는 오래 머문다. 짹짹거리면서, 저들끼리 음식도 나누고, 누가 맛있게 먹는지 쳐다보기도 하고, 어떤 공부를 할지 의논도 했다.



모이로 유인하고 싶지는 않다. 앞집은 때로 모이를 주는지, 집 앞에 한참 머물고, 때로는 몇 무리씩 오기도 했다. 소문에는 경비아저씨가 모이를 준다는 말도 있었지만, 확인은 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둥근 화분을 따라 돌던 녀석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던지 몇 번을 돌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갑작스러운 행동은 아니었을까. 참새가 쳇바퀴 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더 CC TV를 달고 싶다.

오래전, 인기리에 방송된 미니시리즈가 있었다, 남자주인공은 붐 오퍼레이터로 소리를 채집하는 직업이었다. 일하는 현장뿐만 아니라, 아무도 없는 낮에는 빈집에서 어떤 소리가 났는지도 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와 차의 경적, 옆집의 작은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채집해서 소리를 분석하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었다. 그처럼 나도 CC TV를 달아서 녀석들의 재롱을 보고 싶다.



하지만 자신들의 사생활이라고 완강히 거부하면서 자그마한 소리에도 풀쩍 날아오른다. 녀석들은 우리 집을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고, 주인인 나는 그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건 누가 들어도 억울하다.



만약 깃털을 남기고 가는 녀석을 찾으려고 CC TV를 달면, 주위에서 무슨 소리를 할까? 미쳤냐고, 시인이냐고, 저마다 한 소리씩 해대겠지. 그도 그럴 것이 너나없이 바쁜 세상에 참새들의 행적을 좇기 위해 CCTV를 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나.



비용도 비용이지만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그래서 시도도 못하고 늘 마음에만 두고 있다. 이런 마음을 눈치챈 녀석들이 우리 집에 왔다 갈까?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찍어 하루에도 서너 번 돌려보며 '예쁘다.'라고 감탄할 건데.



이건 초상권 침해에 사생활 침해다. 인간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우리는 아무 곳이나 날아가면 안 되냐.'라고 거센 항의가 들어올 것이 뻔하다.



그래서 CC TV를 못 달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자주 가는 공원에서 모델을 서주었는데, 그들도 사이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님, 부끄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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