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낯선 골목에서

ㅡ 시간에 따라 다른 골목

by 민교


어떤 시인은 자신을 키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지만, 나를 만든 8할은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그 골목을 10대 후반과 20대에 걸었고, 60대가 되어 다시 걷고 있으니까.


학교에 가는 길이었고, 직장에 가던 길이었으며,

코로나를 피해 걷던 한적한 길이다. 이제는 아침

산책길에 걷는 길이라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안다고 생각했던 골목이다.


어떤 브런치를 읽다가 사진 한 장이 참 낯설었다. 거의 매일 그 골목을 지나도 그 카페는 못 보던 곳이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유럽 카페처럼

테이블을 밖에 내놓고 새빨간 테이블보까지 늘어뜨려 놓은 곳이라니.


문을 활짝 열어놓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는

그 집이 궁금했다. 마침 오후에 그 골목을 지나갈 일이 생겨서 그 카페를 찾아갔다. 사진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가 찾아올 걸 아는 듯 잔잔하게 이국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다섯 걸음쯤 들어가면 되는 곳 아닌가.

마치 새로 생긴 곳을 찾은 듯 했지만, 내가 지나는

시간과 카페가 열려 있는 시간이 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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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을 말하려면 기다란 강이 흘러도 모자라리. 둘째 언니가 처음 선물을 사준 곳에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하고 어떤 책이든 꺼내 주던 곳이다. 그 골목을 알고부터 집에서 조금 멀었지만, 알록달록한 책을 구경하러 많이 갔었다. 우리나라 배낭여행자 1호라는 김찬삼교수님의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베를리너판 반 크기의 양장본으로 견본으로 펼쳐놓은 곳이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고, 팔던 그곳에서 세계여행을 보는 사람은 적었지만, 만져보고 또 만져보는 학생들은 많았다. 솔직히 그때 어른들은

여행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학교에 갔다 오다 우연히 발견한 <뿌리 깊은 나무 2호>는 오랫동안 내 보물이었다. 창간호는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 가치를 안 사람이 내놓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금서였던 책들도, 귀함을 몰라서 내놓은 책 무더기 속에는 책가도 그림이 많았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금 롯데백화점 앞의 은행골목 안에는 일본의

의상잡지와 인테리어 책들이 많았고, 부산이 최전성기이던 시절, 그 골목 주변에는 의상잡지를 찢어서 옷을 맞추러 오던 멋쟁이가 많았다. 광복동의 많은 화랑도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어 인상파나 모네, 르노아르 등의 화집을 살 수 있었으며, 지금 근대역사관이 된 미 문화원에서

샘 프랜시스 전을 볼 수 있었다. 그 비디오를 보고 오다가 보수동 책방골목이 가까이 있음이 얼마나 자랑이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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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서 가만히 나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바뀔 수가 없다. 특히 보수동 책방골목은.

그러나 어쩌랴. 사람도 옛사람이 아니고, 생활환경이 달라지고, 읽는 도구도 달라져서

이름만 남은 보수동 책방골목은 나이 든 엄마 같다.


엄마는 집이 좁아 미어터져도 자식들을 위해

모로 누웠고, 문풍지로 스미는 바람을 좁은 등으르

막았었지. 그런 자식들이 컸다고, 제 앞가림한다고

훌훌 자신의 둥지를 찾아가고 나니 빈둥지처럼

이름만 남은

책도 몇 권 안 꽂혔구나!



지난날의 영광이 컸기에 더 애잔한 골목은


아침이지만 한산하고, 옷집이 생겼다.



오래오래 책방 골목을 지나다니는 나는,

책이 만든 사람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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