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닮은 기차여행

ㅡ 뜻대로 되지 않는 많은 것들

by 민교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의 등 공신은 날씨다.

그때 기분에 따라 어딘가로 불쑥 떠나기도 하지만, 여행이라는 이름표를 달 때는 날씨를 꼭 챙기게 된다.


그날은 좋았다.

이랬으니까.



남편은 어디든 갔다가 돌아올 때면 다시는 안 간다고 맹세에 맹세를 거듭한다. 그래놓고는

두어 달에 한 번 집을 나설 때면 표정관리를 한다.

좋아하는, 멋진, 괜찮은 등의 표현은 자신과는 먼 단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 어디 그런가.

꼭 그 단어가 아니어도 상황과 표정에 따라 괜찮고, 멋지고, 좋다고 말하는 게 대기 중의 습기처럼 느껴지는데. 러건 말건 기차표는 샀고, 우린 날짜에 맞추어 떠나야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순천만 국가정원이다.

나이 든 부부가 무리하지 않고 한나절 놀고 오기에 적당한 곳으로, 경전선을 타고 간다.

경전선은 부전역 ㅡ 순천역까지인데, 전엔 목포역 이 종점이었다. 그때 일곱 시간을 기차를 타고

목포에 었다.



우리는 기차역이라고 하면 부산역이라는 생각이 깊어, 부전역으로 가는 것도 문제였다. 새벽 6시 12분의 첫 기차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는데, 지하철도 5시 16분이라 서둘러야 했다. 첫차로 다대포에서 출발한 지하철이 좌석이 거의 차서 온 것도 놀라웠다. 다들 자신의 필요로 으 리라. 삶의 모양은 다양하니까.

몇 구역을 가자, 옆 칸에 탄 승객이 큰소리를 낸다. 혼자서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다가, 누구랄 것도 없이 나무라기도 한다. 저지를 받았지만 아랑곳없었다. 누군가가 새벽부터 웬 소란이냐고 하다 싸움이 날까 조마조마했는데, 범내골역에서 같이 내리자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소리와 부딪치는 소리로 어수선했다. 저러다 싸움이 나서 기차를 못 타면 어떻게 하지 하는데 서면역에 왔다. 서면역에서 소리를 지르던 사람도 내리고, 탈 사람도 다 탔는데 움직이지 않는 지하철. 그때 방송이 나왔다.

'다른 노선을 타고 와서 환승할 승객을 잠깐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5분쯤 지나서 우리를 부전역에 내려주었다. 부전시장을 찾는 사람이 많을 때는 그 시간에도 활기가 넘쳤겠지만, '휭'하고 바람만 불었다. 동해선을 탈 사람과 경전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행의 설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혹 어느 곳에서 장이 서는지, 커다란 보퉁이를 든 사람 많았다.



드디어 6시 12분. 기차는 목적지로 향한다.

앞 좌석에 앉은 연배의 여인들은 좌석표를

샀는지, 이 좌석, 저 좌석을 옮겨 다닌다.

그 와중에도 대화는 끊이지 않고, 간간이 간식으로 영양을 보충한다.

시커먼 터널을 수도 없이 지나자, 남편의 낭만병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과 촌락이 어간 지명에다 지금은 없어진 고향집의 향수 때문인지, 기차만 타면 저 멀리 차창밖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마을에 옹기종기 집들이 있는 그런 낭만 말이다. 속도가 빨라지면서 낭만은 접은 세상을 살면서 욕심이 많네. 남편의 고향은 군과 군의 경계지역이라 조금 소외된 곳이었지만, 지금은 8차선 도로가 생겨 차만 싱싱 달리는 곳이 되었다.



하늘은 희붐하게 아침을 열어주었고, 1시간쯤 달려 삼랑진역이다. 여기서 타는 사람은 새벽부터 서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부럽기도 한데, 그렇게 자주 다니던 곳의 쇠락한 모습은 마음이 리다. 지방소멸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 기차에 탄 노년층이 사라지면 정겨운 마을에는 정적이 내려앉겠지.



가을은 짙어졌는데, 옛 정취는 없. 간간이 추수 끝난 논에 마시멜로가 눈에 띈다. 도톰한 맛에 사진 한 장 찍으려는데, 침 기차가 선 곳은 짙은 주황색 기둥이 있는 곳이다. 앞서갈 기차를 기다려준다고 5분간 정차한 역은 반성역이다.

이 기차, 왜 기둥옆에 서는 거야. 반성 좀 해야 돼.



기차는 쉼 없이 달려서 경상남도 하동을 지나고, 라남도 진상 왔다. 진상 가까이 광양항이 있는 곳이라 '물류고등학교'가 보인다. 리 광양제철의 크레인도 보이니, 종점이 가깝다.

9시 38분, 종착지인 순천역이다. 역사는 깨끗하고 넓다. 배가 고픈 남편이 서둘러서 역사 구경은 못하고 건널목을 건넜는데, 마음에 드는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장날이라고 끌차를 끄는 사람은 많은 데, 장은 엉성하다.



소머리국밥집라 편하게 먹을 줄 알았다.

한 사람이 식사 중이었는데, 그 사람의 해장술이 문제였을까. 갑자기 생각이 난듯 당 여주인과 어제 가져온 참게값을 받았느니, 못 았느니 실랑이를 했다. 그런다고 우리가 주문한 국밥은 뒷전이다. 남편은 정신없이 밥을 먹고 나와서 짜증을 낸다. 식당 주인에게 한마디 하면 뭐하겠나. 우리는 길손이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은 매일 볼 사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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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국가정원으로 가는 버스는 금방 왔다. 역에서 멀지 않았고, 하늘은 바람과 멋진 구름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드넓은 정원은 화려하고 풍성했다.



세 시간을 넘게 앉아서 왔던 피로도 날릴 만큼 알록달록한 꽃들은 말을 걸었고, 발이 아프도록 걸었다. 풍차도 돌아갔고, 윤슬이 반짝이는 개울은 만이 되어 바다로 이어진다. 아침 일찍부터 놀이객을 태운 모노레일은 바쁘다. 더없이 좋은 가을날에 벤치에 앉아 춤을 추는 억새에 마음을 빼앗기니, 시간도 흘러간다.



하염없이 앉아있을 순 없어 발길을 돌리는데,

늦가을 한낮은 뜨겁다. 역이 가까워서 걸어가도 되겠다고 했지만, 더 걸을 생각은 없다. 남편은

직진본능이 되살아나 축지법을 쓰고 싶은데, 역으로 가는 버스에 언짢은 표정이다.

아니, 또 걷는다고. 역 주변에 가서 아들이 보내준 커피를 마셔야 된다니까. 버스에서 내려 아들이 보낸 커피를 마시고 역 앞의 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무언가 아쉬웠던 남편은 장에 가서 떡과 물을

사 왔다. 방앗간집 아들이었던 기억은 장날이면 떡집 앞에서 반짝이네.



오후 3시가 지나고 순천역 ㅡ 부전역 기차를 탔다.

아침에 못 찍은 마시멜로도 찍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을 지나 부산으로 향하는데, 오후 5시가

지나자 산그림자가 놀러 나왔다. 30분이 더 지난

강에는 그림자가 짙어진다.




부전역 근처 설렁탕집에서 양껏 밥을 먹고 집에

오니 저녁 9시가 가까웠다. 아이들에게 잘 왔다는 톡을 하자, 좁은 신발에 갇혔던 발이 아팠었다고 했다. 내 인생 사진첩에 좋은 날로 새겨진다고

너도 힘들었네. 모든 것이 고마운 날이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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