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말하는 정을 모르는 나, 외계인인가- 성인 애착
한국은 정이 많아서 좋아요- 돌리던 TV방송에서 어떤 외국인이 하는 말이다.
정(情)- 정이 많다. 주로 외국인의 입을 빌어 들려온다.
정이 많다는 말은 이렇게 들린다. 감성적이고 쉽게 놓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고. 따스한 사랑의 이미지 정은 쉽지 않다. (동물이나 자연의 것엔 그래도 된다. 사람에겐, 아마도 두려운 것이다)
대신에 이성적으로 분간을 해야 똑 부러진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니 정은 서랍속 고이 넣어두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울 수는 있지만 울음을 그치고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나... 다. 반면 아이의 이모는 아이를 우선 안아준다. 감정을 먼저 알아주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가까운 이들에게 더 정 없이 군다. 그렇게 보이고 싶은 모양이다. 일단 울면 안 된다. 울면 바보다. (바보가 어때서, 왜? 그게 나쁜가? 이제야 드는 생각이다. 아마도 어릴 때 들은 말이다.) 정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보가 아닌 게 최 우선이었던 거다. 방어다.
따스하고, 다시 보고 싶고, 누군지 모를 타인에게도 나눠주는 사랑의 의미인 정 - 이걸 모른다. 몰랐다. 모른다 여기고 싶다. 알 수록 빠져들거다. 책으로 읽고 드라마로 본다고 느끼는가? 가족 안에서 분명 있었겠지만 앞서 차단해 버린다. 정이 없는 것처럼 살아내는 것이다. 불씨가 있다가도 없어져버린 듯하다.
정이 없다. 그렇다고 한다. 엄마 말로는 (엄마가 화가날 때면) 너는 왜 이렇게 차갑니. 정이 없니, 톡 쏘니라고 말하곤 했다. 그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온 듯하다.
그런말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음 나는 정이 없는가보군, 한번 더 입력하면서 말이다. 그런 줄 알고 산다. 그렇게 말해주는게 나쁘지 않았다. 바라고 바라던 정의 반댓말로 들어버리는 거다. 진짜 그런건가?
(아무래도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탄산수인가 보다. 누군가가 찾는다면 목이 막힐 때 시원하게 해주는 인간이 되겠다. 단 누군가가 찾을 때만.
아무 데나 탄산수부심을 부리면 안 되는 거다. 타인의 목구멍을 때린다.)
앞서 방송에서 외국인에게 어떤 점이 정이라 느껴졌나요? 물었다. 낯선 한국에서 보내는 명절, 동네 할머니가 오라고 해서 마루에 앉았더니 송편을 입에 넣어주셨다. 많이 먹으라고 이 할머니도, 저 할머니도 송편을 주셨다는 것이다. 정이 느껴져서 이후로 몇년 째 머물게 되었다. 는 기억의 한 장면을 들어본다.
외국인도 느껴본 정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정, 가까운 사이에서 정을 분리시키고 있었다. 외국에 나가서는 한국인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경험한 바가 없는 나로서는 그 말을 신뢰했다. 그 말을 들려준 사람을 믿는 것이다. 경계가 우선이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뉴스에서는 그런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하는 것도 필요했다. 가까운 데서부터 한국인의 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최근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의 일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이들로부터도 고마움을 느낀다. 떠올리면 웃음이 나고, 고마운 순간들이다.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다. 다시금 아이로 되돌아가 자라나는 중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이를 안고 걸어가다가 보면 '애기엄마' 하며 누군가 부른다. 아차, 애 발에 붙어있던 신발 한 짝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누군가는 공주 옷이 떨어졌다며 와서 알려준다. 주워준다. 버스에 두고 내린 아이 모자, 심지어 뻥튀기 과자는 창문 밖으로 내던져줬다. 버스정류장에 내려앉은 우리가 마침 나이스 캐치 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런 일들 뒤엔 한바탕 웃음이 난다.
잠든 아이를 안고 버스에서 내렸다. 우산을 두고 내린 지도 몰랐는데, 다음날 버스정류장에 가보니 일어난 일은 이랬다. 아이 우산이 버스정류장 귀퉁이에 고스란히 서 있다. (아이우산이라 가능하다 생각한다).
이런저런 일들로 믿을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중이다. 하나 둘 떨구고 다닐 때 (그러려 한 건 아닌데), 혼자 모든 걸 챙기려 하는 똑 부러진 모습을 보이려 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없다. 눈앞에 갈길만 보여 걸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 도와준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부족해도 된다. 그러려고 의도한 게 아니잖나.
아이를 안고 버스가 멈추길래 내린다. 내 갈길을 가는데 나도 모르게 떨어진 거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은 그냥 도와준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도. 그동안 애써왔다. 혼자 다 챙겨가고 하나도 흘리지 않으려고, 똑 부러지려고 말이다.
그러니 정을 느낄 틈도, 여지를 주지도 않았던 거라 느꼈다.
사람을 믿는 것, 신뢰하는 것. 이건 애착과 관련된다.
성인 애착 유형 검사 : http://typer.kr/test/ecr/
- 자신을 긍정, 부정으로 바라보는지, 타인을 긍정, 부정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나뉘며, 그에 따라 타인에 친밀하게 보이고 '싶어'하는지 진짜 친밀한 건지를 구분한다고 읽었다.
중요한 건, 이 검사는 할 때,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도 달라질 수 있다. 혈액형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 희망적이다.
내 경우에는 이걸 처음 알았을 때,
자기부정, 타인부정의 강한 덫에 놓여있었다. 말 그대로 혼란형.
그러다 어떤 때엔 자기 긍정, 타인 긍정이 나오다가도, 어느 시기엔 자기 긍정, 타인 부정이 나온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는 확언을 하고, 작은 성취경험을 함으로써 올려둔 나의 긍정상은 있으나, 이제 타인을 신뢰하고 다가가도 된다, 부탁해도 된다라고 말할 경험을 더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금 안정형으로 올라서겠지. 그러면 삶이 더 편해지리라 믿는다.
- 안정형(Secure): 자기 긍정, 타인 긍정
- 집착형(Preoccupied): 자기부정, 타인 긍정
- 무시형(Dismissing): 자기 긍정, 타인 부정
- 혼란형(Fearful): 자기부정, 타인 부정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현재 어떤 애착 유형을 지니고 있든, 자신의 애착 유형을 확인해 극복한다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 속에서 친밀함과 편안함을 누리는 초석이 될 것이다. 불안정 애착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과거의 상처와 실패 놓아주기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지기 △피하지 않고 맞서기 등이 있다.
-출처 : 하이닥 유지후 기자. https://mobile.hidoc.co.kr/healthstory/news/C0000672607
가까운 사이에서의 정, 신뢰, 소속감을 먼저 회복한다. 그러는 중이다. 애착, 정, 신뢰,
그 다음의 미션이 하나 더 있다.
다가가 도움을 주는데서 고마움, 따뜻함을 느꼈다면 다음단계는 친밀감이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이전의 나는
친밀함이란 무엇인가를 다뤄보아야겠다.
친밀한 사람.
친하다- 가까이 사귀어 정이 두텁다.
두텁다 -신의, 믿음, 관계, 인정 따위가 굳고 깊다.
다가가다.
가까이- 한 지점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상태로.
일정한 때를 기준으로 그때에 약간 못 미치는 상태로.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친밀한 상태로.
외국인이 말하는 정을 이제사 감지했다면, 이제는 친밀감도 그래해보고 싶다. 세상 관계를 다시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바람이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탄산수처럼 사는 것, 타고난 대로 사는 것도 내겐 편하다.
날 꺼내드는 사람에게 시원함을 드리겠다는 자세로, 아무에게나 친밀해지자고 들이댔다간 목 따가움을 드릴 테니 말이다.
가진 장점을 기반으로 산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은 배우며 나아지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