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들어서면 하는 일, 가방 던지기 그거요.

아이를 먹일 두 번째 혼수품, 세 번째 혼수품도 있잖아요.

by Shiny


아이가 태어났다.

한 사람이 온다는 건, 새로운 문화가 오는 거다.


아이를 위한 것을 들이는 소비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집을 차지한 것들은 전부 어른을 위한 거였다.


아기 침대부터, 여기저기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

현관밖 신발에 앉지 못하게 멍멍이처럼 가둘 것들이 라든지가 필요했다.


먹을거리도 달랐다.

잇몸만개한 웃음을 뽐내던 아이에게

이빨이 한 개 두 개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이유식을 준비했다.


조리도구, 이유식을 담아 냉동할 용기, 각종 실리콘으로 된 안전하다는 것들

갈갈 갈 해서 걸어줄 체망, 유아 식판,

허리와 목에 힘이 없어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잡아줄 의자, 이유식 조리법을 담은 책 등

이유식 재료들을 저울에 올리기 전에, 0g에 맞춘다.

50g, 한입 거리도 안 되지만 우리 아이는 열 숟갈을 먹을 거다.

모두 아이 맞춤용이다. 엄마는 어느 것 하나 아는 게 없으니 0부터 시작한다.

3개월, 거진 100일의 먹놀잠 시기가 익숙해질 무렵. 엄마는 다시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연마제를 바짝 제거해 둔 냄비, 절구는 또 뭐람.

이유식 숟가락은 어떤 걸 써야 아이가 넙죽 받아먹는지,

턱받이는 어떤 걸 써야 아이가 편한지,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다. 선배님들 땡큐입니다.

지금 기분을 행복으로 정할 권한은 당신에게 있어요.

재우는 일이 엄마를 위한 일이라면, 먹이는 일은 아이를 살리는 일이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허용된 쇼핑시기다. 또 한 번의 도파민에 빠져든다.

제2의 혼수라고 불릴 만큼 주방 조리도구와 아이용 물건을 사들인다.


쌀을 끓여 체망에 걸렀다. 쌀가루를 써도 되지만 쌀알을 짓이겨 미음처럼 만들었다.

내가 이런 걸 하고 앉아있다니, 소꿉장난 같기도 하지만 진지하다.


두근두근 첫 입을 먹였을 때, 새 모이를 먹듯 냠냠 받아먹는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담아둔다.

이유식을 먹는다니, 사람이 되었다.



먹는 것은 사람을 만든다.

아이도 우유를 거쳐 씹을 것을 접한다. 새로운 맛, 다양한 맛, 감각을 접하고

추후 어린이가 되어서라도 낯설지 않게 먹길 바라는 마음이다.

단호박, 비타민, 낯선 재료들을 자르고 다진다.

그러다 이유식 두 달 즈음, 우리 애는 이유식을 참 잘 먹어~라는 말을 하고도 아차 싶은 순간이 왔다.

아이가 갑자기 밥을 거부한다.


입 꾹 닫고 도리도리, 바닥에 마구 문지르거나 그릇을 휙 내친다. 엎거나 하니 흡착 식판이 나오고, 미용실 망토 같은 걸 둘러주는 것이다.

설마설마하던 게 눈앞에 벌어지는 순간. 아이의 성장이라며 바라봐야 한다는 머리와 달리, 마음은 아뿔싸다.


차라리 잠을 자고 밥을 사줘야 하는 시기가 왔다.

시판 이유식은 또 잘 먹는다, 이유는 모른다.

어쨌거나 먹인다.


이 시기가 참 버거웠다. 밥, 너의 인생 첫 거부가 이것이냐. (그전에도 있었겠지만 내 기억엔 이게 처음이다)우와아아아 정말로 돌겠는 거다. 바닥에 뿌릴 때, 으아아아악. 아이의 자아와 엄마의 자아가 충돌하는 중이었다.


으..... 잠을 못 자고 이걸 만들었다 아그야,

뭐와 맞바꾼 건데.

나를 좀 알아봐 달라고 애한테 말해봐야 바닥에 문지르기로 대답한다.

귀하게 준비해 둔 이유식 의자가 맘마로 칠해진다.

조용히 아이를 내려두고 의자를 닦으며 도를 닦았다.

아이에게 애꿎은 화를 전달하면 안 된다. 이 시기를 버티게 해 준 8할은 의자였다.

그냥 닦는다. 무의식적으로. 그냥. 이때 느꼈다.

보상심리는 엄청나게 무서운 거다.



기대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기대를 하는 거다.

나 좀 알아달라고.


이제 아이는 이유식을 지나, 흰밥만 먹더니 못 먹는 게 없어졌다.

바라던 대로 어느 것이나 잘 먹게 되었다. 먹고, 자고, 놀고의 반복, 게다가 말도 한다.

친구가 되었다. 아이는 걷고 뛰고 자라나는데, 엄마는 아이와 얘기하느라 까꿍언어에 익숙하다.

뭔 말을 하면 이, 그, 저, 뭐더라, 를 반복한다.

얘기를 하고 싶지만 어른들과도 대화가 어렵다 느낀다. 각자의 언어로 말만 하고 듣는 이가 없다.

엄마의 먹거리도 필요하다.



엄마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나를 위한 살림을 차린다. 제3의 혼수를 들일 때가 되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며 치운 것들이다.

물건이라 말하지만 나, 신생아가 말문을 틀 때까지 2년간 묻어둔 나를 깨워 들여오는 것이다.


화분을 들여왔다. 신생아가 있는 데에 화분이 있으면 괜찮나요? 라는 질문글을 보던 날,

덜컥하는 마음이 들어 좋아하던 화분을 저 멀리 치운 것이었다. 이제 흙을 파먹지 않으니 가져다 두었다.

초록이 덕분에 집에 생기가 돈다. 이참에 나도.



그다음은 뭐였더라.

아이가 태어난 뒤 1년 사이 많은 가구를 치웠다.

남편과 나란히 두었던 내 책상을 치우고,

아이가 크면 뛰어내린다고 소파도 버렸다. 진즉에 식탁은 내치웠다.


책상이 없어지니 서랍 안 충전기부터, 필기류 등 물건은 오갈 데가 없어졌다. 사실 필요가 없었다. 화장품들부터, 자질구레한 것들은 버릴 것들이 되었다.


이런 것들, 신생아를 키우는 데는 유해했던 엄마의 것들. 눈 코 입을 채울 것들.

아이가 자라고 나니 다시 들여올 때가 된 거다.


몇 년간 쓰지 않던 화장품도 다시 들여왔다. 애 얼굴에 볼을 댈 때 묻어나니 치운 후였다.

벚꽃이 만개한 4월 잠실의 어딘가에서 팩트를 사서 나오던 날이 기억난다. 눈부신 날이었다.

마침 독서모임을 간다며 한껏 올라온 자아를 챙겨 나온 길이었다. 게다가 혼자였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그 발이 너무 가벼웠다. 그러면서도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생기를 더할 입술과 얼굴경계를 구분할 눈썹. 그런 것들.

반지나 목걸이, 팔찌, 아이 얼굴에 흠집이 갈까 봐 넣어두었던 나를 위한 반짝이는 것들.


향수는 혼자 나가는 날에 바르려고 했다. 아이가 킁킁 개코처럼 바로 알아챈다.

향기 또한 힐링이 되는 것이었는데, 디퓨져는 고사하고 편백수로 집안의 냄새를 잡는다.

그러다 천연 아로마를 알게되는 순간 너무도 기뻤다. 안전하게 향기를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장은 잘 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를 거쳐 들여올것과 아닌것을 구분하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건, 책상이다. 작업 공간이다.

남편은 이제껏 자기 공간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한다고 책상과 의자를 업그레이드했다.

그렇게 하라고 적극 지지했다. 나는 필요 없어, 당신이라도 좋은거 써.

(같이 쓰자는 마음도 10 프로는 있었다.)


가끔씩 빌려 써야 할 때면, 아~나도 책상을 안 치웠더라면 하는 것이었다.

한창 자판을 두드리는데, 잠깐 나와볼래요? 할 때마다 남의 자리에 쓰는 게 아쉬웠다.

노트 하나, 읽던 책 하나, 귀여운 인형 들, 이런것들을 보며 웃던 나였는데 다 치워버렸다.

남편책상에 올려둘 순 없고, 냉장고, 부엌에도 갈 곳이 없다.


아일랜드 식탁 뒤와 냉장고 사이, 여기가 아지트가 되었다. 폰을 들고 숨는다. (나 찾지 마.)

화장실도 쉼터가 되었다. 아니 그른데 왜 숨어야 하지?


쇼파도 치웠기 때문에,

거실과 안방 부엌 중간쯤에 서성거렸다.

아이와 남편에게 불려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책상에 앉은 남편에게 나는 말을 걸지 않는다. 뭘 하고 있으니까. 나에게도 그래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 책상은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스타벅스에 가면 자리부터 맡는다. 한 뼘 테이블이라도, 그래야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다.


살면서 아이와 시소를 타듯 균형을 맞추는 거라 여겼다. 그런데 저울질이 아니다.

엄마의 차례는 아이 앞에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라면, 먹고 자고 살만해지면

꾹꾹 눌러뒀던 엄마의 자아가 슬슬 올라온다.

당신의 의자, 아이의 의자는 그대로 있는데

나의 책상은 없다. 당신 책상과 의자는 이왕 사는거 좋은거로 사라고 했잖아요, 라고 한들. 이건 그의 것이다.

내 것은 당근마켓에 사진찍어 팔고, 내다 놓았다.

우선순위 조차 모든 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비우고 무균실처럼 하얗게 만들고,

시간도 그렇게 비웠다. 그게 나보다 먼저였다.


이제는 시선을 돌려본다. 공간에서부터 찜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홈트로 운동을 하려다가 밖으로 나온다. 공식적인 시간이 생겼다.

자아가 80프로까지 올라왔다. 눈을 번쩍 뜨고 각성했다.

(이 시기 자연스레 갈등도 많았다)

제3의 혼수를 구매할 시기다.

눌러 담은 나를 꺼내 바람을 넣는다. 실은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다.


거실에 둘 커다란 거울을 샀고, 레이스 가득한 커튼을 샀다.

아주 하늘하늘하고 예쁜 것으로, 좋다.

나를 바라보고, 옆을 바라본다. 우리를 함께 바라본다.

(남편은 산지 이틀이 지나서야 알아봤다, 아무렴, 오히려 굳, 내가 좋다.)


어느 순간 잘 웃던 내가 사라진 것 같아서,

큰 거울을 두고서라도 무표정을 밝게 채워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앞에서 춤이라도 추면 웃음이 올라오겠지.

유머 게시판을 들락거려 본다.


이런저런 핑계로 비워냈던 물욕을 스멀스멀 채워둔다.

미니멀을 접해본 초기였다면 이건 이래도 되나? 하며 접어두었을 테다. 뭐가 우선인지 선별하는건 필요하다. 채워도 된다. 마음이 바껴도 된다. 해보니 그렇다.


이것저것 접하고 맛보면서 감각을 세워본다. 감각을 익혀보는 것이 필요하다.

책상, 의자, 그리고 또 다른 것들.


아이가 말하길, 엄마 토끼는 여기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한다. 식탁에서 밥만 차리는 엄마로 여기지 않아서 참 고마웠다.




아이를 위한 이유식 의자 검색에 주문 후 한 달을 기다렸던 정성으로 엄마의 것도 챙겨봐야 좋다.


누군가의 지침에 따라 버리고, 들이고를 반복했다.

그 중심에 내가 있는지 봐야 한다. 지하실 꽁꽁 묶어 내려두었다가 다시 끌어올려 빛을 보는 것만 같다.


다시 식탁을 들이길 잘 했다.

가족이 둘러앉아 눈을 바라볼 장소, 엉덩이 붙일 곳은 필요하다.


스스로 건져 올려야 한다. 여전히 시행착오중이다.

지침은 지침일 뿐, 실전에서는 제 발로 움직이는 자가 자기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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