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좋은 진짜 이유

우리는 현실을 살기 위해 나아간다. 놀이는 과정이자 현실이다.

by Shiny




두 돌 즈음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는 주방놀이와 모래놀이였다. 특히 키즈카페나 놀이방에 가면

맘마놀이를 하느라 모형 싱크대 앞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또래 아이들이 다가오면 갖고 노는 아이템은 꼭 겹치게 마련이었다.

하나를 두고 아웅다웅할 때, 이거 양보해 주자 를 말로 내뱉으면 우리 아이가 실망하고, 하나씩 양보하며 해보자를 할 때, 상대가 받아줄 지도 미지수인 상황. 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 여러 번이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단 두 개였다.

갈등상황을 어떻게 풀 것인가,

그리고 이 장난감을 정말 좋아하는가 보다 하며 검색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낮잠에 빠진 사이, 밤새, 검색은 이어졌다.




갈등상황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다른 친구들을 보고 배우면 되었다.

어떤 엄마는 오빠가 먼저 갖고 놀고 있으니까 기다려 줘,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동생 한 번만 빌려줘라고 했다. 그리고 먼저 하고 있는데 가져가서 미안해라고 말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아이들의 세계엔 부모님들이 항상 같이 했는데 여기서 모델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참 힘들면서도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건 나중에 다루겠다)


장난감 검색, 원목이냐, 후기냐, 잠깐 갖고 놀다 흥미가 떨어질 것이지만 우리 아이가 원했다면, 매일 갖고 논다면이라는 가정이 들러붙는다. 그러니 가격 따윈 안중에 없다. 최대한 키즈카페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 브랜드를 잘 모르던 시절이라 검색, 또 검색을 했다. 그렇게 쇼핑으로 엄마의 도파민을 충전하고 있었다.




정작 아이는 실물을 좋아했다. 장난감을 갖고 놀더라도 진짜 주방에서 다루던 조리도구, 나무주걱, 국자, 우주선 모양 찜기, 냄비와 그릇, 찻잔까지도.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맑기도 하고, 쨍그랑 거리기도 했다.

장난감은 플라스틱 사출물이어서, 나무 모형이어서, 그 느낌이 영 나지 않는 것이었다. 폭신 거리는 이0아의 주방놀이 장난감까지 들이고 나서야 깨달았다. 관건은 가짓수를 늘리거나 소재가 아니다.



누구와 노느냐, 아이는 정말로 어떤 걸 원하느냐, 얼마나 재밌게 노느냐였다.


내가 할게, 내가, 를 달고 사는 즈음, 아이는 진짜를 원하고 있었다.


몇 년 전까지는 그랬지만, 아이는 이제 내가 쓰던 소스통을 원한다. 초장, 샐러드소스, 스리라차 소스, 딸기잼까지 다 쓴 걸 씻어서 버리려 했다. 엄마, 나 맘마놀이할 때 쓰게 줘,

다 먹은 포장지( 밤, 팝콘, 빵, 도시락 통), 모두 재활용통에 들어가려고만 하면 번개같이 건져간다.

이거 나 쓸게 엄마~,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먹고 가실래요 포장하실래요? 를 묻는다. 삑, 여기 진동벨이요. 라며 네모난 걸 쥐어준다. 바스락거리는 포장지에 든 포크와 스푼을 꺼내주고, 쇼핑백에 포장된 음식들을 노트북 옆으로 배달해 준다. 한마디도 함께 일러주고 간다. 가짜로 드세요. 진짜로 먹으면 안 돼요.


우리가 함께 식당에 가고, 카페에 갈 때마다 아이는 귀 기울여 듣고 보고 있었다. 현실훈련을 하고, 조리과정을 본 아이는 직접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오면 진짜와 같이 하는 거다.


그저께 다녀온 햄버거집에서 처럼. 번호표를 주고 도장을 찍어준다. 쿠폰이다.

장난감을 들이밀었던 내 노력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실물을 찾고, 갖고 놀고 있었다.




내 어릴 적을 돌아본다. 나뭇잎을 따서 돌돌 말아 100원짜리였던가, 작은 칼로 썰면 그게 꼭 김밥 같았고 초록 진액이 도마로 삼은 돌멩이 위에 짓이겨졌다. 그게 참 재밌었다. 그땐 장난감이 없어 그렇게 놀았으면서도 만화가 재생되다 잠시 나오는 장난감 광고에 눈이 갔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에겐 결핍이 없으라며 플라스틱과 나무, 봉제 장난감을 들이민다. 이런 바람과 달리 아이는 실물을 더 좋아한다. 이건 진짜다.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할 때 아이는 나무주걱(주방용)을 들고 땅을 판다. 목부분이 단단해서 아주 잘 파진다. 플라스틱 삽과는 깊이가 다르며, 처음 보는 물건에 주변 아이들은 다가와 한 번씩 만져보곤 한다.

실물은 그런 것이다. 진짜는 진짜다.



우리는 현실을 살면서도 모형을 들이민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진짜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렇다. 가짜보다는 진짜를 더 좋아한다.

세상의 욕망에 이런저런 것들을 들이밀지만 아이들은 선별해 낸다.

그리고 어른인 나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현실 세계를 사는 '아이'라고. 그러니 진짜를 만져봐도 괜찮다고.


아이와 식탁의자를 조립했다. 나사를 돌리고 육각렌치를 돌리고, 우리 집 의자 네 개중 두 개엔 아이 손길이 묻었다. 이거 누가 한 거야? 하면 ‘나요’ 하며 조그만 손으로 가슴팍을 팍 친다. 뿌듯함.


내 손때가 묻었다는 것은 아이도 안다.

그런 기쁨을 알게 하며 같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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