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다시 재생하려고.

너와 내가 안다. 그러면 그걸로 됐다. 잊어도 괜찮아진다.

by Shiny

여행 가기 전날까지 하고 있던 일은

가방 싸기도 아닌 핸드폰 데이터 용량 확보하기였다.


찍어둔 사진이 많아서였다.


비워야만 새로 찍어올 수 있을 테니까, 새로운 광경과 장면들을.

어떤 것이 올 지 모르는 것들을 담을 준비를

코앞인 전 날까지 하고 있었다.



일상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던 듯하다.

만삭이 되어 핸드폰을 새로 살 때가 떠오른다.

사진첩에는 사진이 몇 개 없었다. 데이터를 옮기면서 진짜 안 찍었네 중얼거렸던 게 떠오른다.

몇 달치 사진이 80장 정도였던가?


그 때까지도 기껏해야 지나가며 보던 햇빛, 장면, 반짝이는,

마음에 드는 순간들을 붙잡았다. 그건 사람보다는 풍경이었다.

필카화면처럼 담아 모아두고 돌려봤었다.


블로그를 쓰겠다고 음식과 뭐와 뭐를 찍으면서 사진이 늘기 시작했지만,

그런 건 바로 지워버렸다.


여행 사진, 그런건 따로 폴더를 만두어 두었지만

특별한 이벤트성 일이었다. 여행을 가서 엽서를 사면 거기 뒤에 편지를 쓰듯

어쩌다 있는 일이라서 소화가능한 수준이었다.



아이가 생기면서는 다른 양상이 시작되었다.

순간순간을 다 붙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길가면서 마주친 골든 리트리버가 정말 컸는데 고작 1살이라고 했다.

얘도 아기였겠네요? 하는 내 말에 주인은 진짜 쪼그맸다고 답했다.


그런 것이다.

아기 강아지가 순 식간에 커

우리 아이도 그럴 테다. 어제 뒤집고 오늘 기고, 다른 이 귀여운 순간을 다 붙잡아두려고 했다.

(우리는 아이 신생아때 부터 1일 1모습 사진을 담은 사진첩을 만드는 중이다.)


신생아를 돌보며 쪽잠을 자서 그 순간들이

맨 정신으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도 불안을 보탰다.

나는 기억 못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것이다.


그러다 사진의 양이 늘어가기 시작한 때,

돌아본 적이 있던가? 하면 아니다.

그냥 수집하는 행동이 되어버렸다. 저장 강박증이 생겼다.


다시 열어볼 것도 아니면서 붙잡아야 해!라는 마음이 커진 것이다.

그렇게 매 달 찍어놓는 사진이 700~800장쯤 되어갔다.

(아이폰 사진을 옮길 때, 달마다 폴더에 개수가 잡힌다)


이러기를 반복한 지 몇 년,

바뀌기로 했다. 덜 찍기로 했다.


그 순간에 빠져있던 나와 네가 우리를 기억한다. 그거면 된다.

그리고 잊어도 된다. 좋았던 순간들, 지나간 것이다.


여행지에 갔던 걸 나와 남편이 이야기하면서 그때 그랬잖아 하는 것처럼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하루에 아이 사진을 하나 찍을까 말까 하게 되었다.

불안을 덜고, 순간에 충실하고, 보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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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시로 붙잡으려 했다.

곁에 두려고 했다.

이 순간이 너무도 좋아서, 나중에도 두고 보려고.

그러다 현실을 살다 돌아보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

그거다.

현재를 사는데,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현재와 다른 과거를 본다.

그때 그 기억이 살아 돌아온다.

좋은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분명 있다.

다 같이 딸려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잊어야 한다.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


습관적으로 들던 폰을 내려놓고

사진을 덜 찍고,

아이 눈동자를 상대의 눈동자를 보려고 한다.


잊어도 괜찮을 현재를 살고 있다. 그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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