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3세살 아이를 앞에 두고 우리가 다툰 이유.

우리는 왜 이럴까? 패턴을 찾아본다.

by Shiny


#1.

나와 아이가 동전을 넣고 타는 장난감 자동차에 도착한 건 오후 즈음이었다. 나란히 세워진 세 대의 차.

-엄마 나 저거 탈래


아이가 손가락으로 콕 집어 가리킨 것은

하필이면 먼저 온 아이가 앉아 신나게 타고 있는 것이었다.

-응 그래 그럼 기다리자~ 하고 근처 의자에 앉았다.

아이는 차례를 기다린답시고 서 있었고 말이다.


(그네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근처에 있어야 하니까 이렇게 되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온 아이 엄마에게

우리의 모양새가 기다림의 압박으로 느껴진 모양이다.


-이리 나와, 저기 누나가 기다리잖아 비켜주자.

-괜찮아요, 더 타라고 해주세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러나 아이엄마는 싫다는 아이를 들고 내렸다.

엉엉엉,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울고 있었다. 엄마가 번쩍 안고 저쪽으로 갔지만 소리는 들려온다.



#2.


이쯤 되니, 작년 내 모습이 떠오르는 거다. 양보 좀 해주자는 내 맘에 따라주면 좋겠는데

교육을 시켜온 내 책임+체면도 있는데 아이는 영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린다.


피해라는 것은 더더욱 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애 때문에 라는 말을 듣느니 애를 들고 나간다.

게다가, 상대방은 코앞에서 무언의 압박을 주는 것 같다. 원하는 대로 해줄게, 라며 슬그머니 사라져준다.


이쯤 되면 상대방이나 아이의 마음에 공감할 마음은 어디론가 눌려 없어진다. 오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음, 체면을 더한 미안함이 풍선처럼 커진다. 나의 지휘 아래 있어야 하는 아이의 교육이라는 책임감이다.

(사실 가르치긴 해도 따르는 건 아이맘인데)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 싶었다.

체면이라는 가면을 쓰는 순간 일은 터진다.

공감과 이해, 그럴 수도 있겠네 라는 생각이 먼저 나와야 한다지만, 저 뒤로 사라져 찾을 길이 없다.


미안함에 짓눌려버린 내 생존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가(나와 아이가, 나와 남편이) 별일 없다가도 무수히 다퉈왔던 것이다.


#3. 하나 더 떠올랐다.

나와 아이가 어느 순간 남편에게 짐이 되는 것 같은 그런 상황

(중요한 건, 아무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

그런데도 작아졌다는 거다.

남편과의 대화로 내가 왜곡되게 여겨온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말다툼이 커지면, 아이는 우리의 입을 막는다.

엄마가 아이처럼 작아져봐 그러면 무서워져,라고 말한다. 더 말을 할 수도, 해명이나 이해할 수 없다.


그럴 때면 아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아트박스에 가서 휘 둘러보며 상황을 잊기도 하고,

가방을 싸서 친정행을 하기도 했다.

며칠 지나고 보면 잠잠해졌다.


왜 그랬을까.

나는 어째서 짐이라고, 눈치를 받는다고 생각했을까.

그래놓고도 그렇지 않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이해해. 이 말이면 되는 거였다.

공감이 한창 고프던 시기였다.



우리는 충실히 자기의 삶을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가족 구성원이기 앞서 사람이다.

아이도, 나도, 남편도 때로는 자기 것이 소중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동의해 주면 좋겠다. 가족이 그래주면 더 땡큐다.


아이는 자기 장난감이 소중하다.

엄마아빠 체면상 상대에게 양보해 주자,라는 말을 듣는 상황이 되면

자기편을 안 들어주는 "엄마 나빠"라고 귓속말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강제 소환되어 빈자리, 장난감을 쥐어들게 되면 마음이 편한가?

그렇지 않다는 걸 이번에 느꼈다.


#1-1 다시 첫번 째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여기서 종료인가 했는데, 자리를 비켜준 아이가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울면서

우리쪽으로 와다다다 달려온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얼른 나와야겠다. 자동차에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이엄마는 아이를 붙잡고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누나가 눈치주잖아, 나와야지 라고 했다.

그 말이 들려왔다. 눈치,

내가 남편에게 늘 하던 말이었다. 왜 눈치 주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구도 그럴 의도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 상황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이 되면 스스로 주눅이 들었었다. 눈치를 받는다 여기면서.


그런 말을 들었을 남편의 입장이 어땠을지 이번 일을 통해 본다.

상대방은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상대(나)의 억지부림에 한도가 차서

같이 불꽃이 튀면 다툼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처럼.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상대는 낯선 사람이고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우리가 그럴 여지를 줬을 수도 있다.


아이 엄마에게 이해해요.라고 말했다.


저거 타고 싶다고 말은 할 수 있다고 해줬어요, 그리고 기다릴 수 있어요.

여기서 있어서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어요.라는 말까지는 안했던 듯 하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떠오른 것이다.) 우리 애도 작년에 한창 양보에 민감했어서 이해해요 라는 말을 더했다.



#4.

엄마는 어째서 눈치를 보게 되었는가.


내 경우에는, 전업맘이 되고 나서부터였다.

퇴근시간 6시가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밥을 하고 저녁준비를 하고,

아이를 어떻게 어떻게 하고, 널브러진 집안도 치우고.

그럴 수 있지, 이해해요,라고 말하는 우리편 사람에게, 계속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내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내 왜곡된 사고방식이 여기도 있다. 이걸 극복하기로 했다. )


어디선가 만난 모르는 엄마도 내게 말을 걸며 말했다.

그런데, 6시가 되면 심장이 나도 모르게 두근거려요.


이번에 만난 엄마는 다른 말을 했다.

제가 워킹맘이라서 애 마음을 잘 헤아려 주지 못해요.


워킹맘이면 이런 미안함에서는 벗어나 있을 줄 알았다. 다른 종류로 아이에게 미안함이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고.



#5.

그래서 패턴이라는 걸 찾아 본다.

미안함이 점점 쌓여 커져갈 때.

짊어진 미안함의 크기가 사람을 짓누른다.


살고자 하는 생존본능으로 책임과 체면을 들어 쓰게 된다. 가면처럼 말이다. 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절 대 공감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나는 남편에게, 그분은 아이에게.


길에서 만난 두 엄마인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럴 수도 있죠.

고맙다는 말을 오히려 들었다. 감정을 해소한 후 각자의 집으로, 헤어져 돌아갔다.


그러나 우리는, 나와 남편은 한 집에 산다. 풀지 않으면 마음의 찌꺼기가 남는 것, 이 패턴을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오해해서 너무 키우지 않게.



#6. 때로는 이런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가르치긴 가르쳤는데 내 맘대로 그게 되나?

나와 저 사이를 선으로 긋고, 배 내밀고 버티는 게 필요하다 느꼈다.


미안함+ 책임까지 한번에 끌어안으면 그건 쉽지않다.


이해해요.라는 말을 듣고 나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상황이 오면,

그렇게도 나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내편인 너는 왜 몰라주냐고,

그래놓고 타인에게는 왜 눈치주냐고 항변하면서까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커지는 것이었다.




#7.

요가원에서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마지막 순서는 누워서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눈감고 있는 것이다.


끝나는 시간이니 남편과 아이가 슬그머니 나타나서는 바스락바스락 거렸다. 내 귀에 아주 크게 들리도록.


그때 나는 회원들에게 미안함이 커졌다. 그 시간까지 아이와 놀다가 나를 보러 나타난 아이와 남편의 마음엔 공감해주지 못했다.


내가 이들에게 시간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는 책임감 + 이럴 땐 조용히 해야 하는데 교육시키지 못했다는 책임감, 이게 너무도 커져버렸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 요가원 원장님이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때는 달랐다.

그저 아이와 놀아주고 있어서 마음 편히 요가를 하고 있는 것이 고마웠다. 남에게는 책임과 체면을 차리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인 나는 뭘 그렇게 책임을, 체면을 치르고 싶었나. 그것도 제일 가까운 가족을 말이다.


내 손을 넘어가는 일도 많다. 다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했다.

다 떠안을 수도 없거니와

그래놓고 이해해달라 떼쓰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 극복하면 다툼이 절반으로 줄거다.


패턴을 발견한다.

나와 너의 상황을 길 가던 상황에서 발견했다.

조금 더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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