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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유 Oct 29. 2024

울지 마라, 아름다운 그대여

- 이 세계의 그을음을 견뎌온 당신에게




안다,


어쩌면 그대도 깊은 길을 걸어온 자라는 걸


그 길은 부모도, 그 누구도 걸어줄 수 없었던 길


오직 당신 혼자 오롯이 쏟아지는 가시와 밤을


견뎌야만 했던 길



우습지 않은가


나 역시 어쩌면 그때, 당신의 그 옆길을 걷고 있었다


이 우주는 고독이 아닌가, 고독이 아니라면 이 한 줄기 서늘함은 무엇인가


우주엔 가윽한 별 흐르는데 어찌 나에게는 수억의 지네


이토록 어둡게 움틀거리는가 휘파람처럼 흐르고 있었다



차마 스스로 생을 마감할 용기 나지 않아


바스락 낙엽을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옆


당신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당신도 작고 뜨거운 숨을 부비작거리며 운명과 맞서싸우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 더 의연하게 그 길을 건널 수 있었을까


혼자가 아니구나 총총 휘파람 같은 별을 불며

달릴 수 있었을까


당신의 길은 어때? 여긴 깨부수어야 할 좀비들이 너무 많아 망할 녀석들


전사처럼 씨익 이 하나 빠진 검


햇살에 비추며 장난스럽게 웃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생이란 참으로 묘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돌고 돌아 다시 여기서 만났다


당신은 당신이라는 긍지로서


나는 나로서 



각자의 운명이 공기처럼 팽창하며 터지 듯


지금 이곳에선 당신과 나라는 불꽃 한 점이


보아라,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다




사랑한다


그대여


그대의 이름 하나 온전히 알지 못하는 나이지만


내 옆에서 힘껏 자신의 길을 달려온 당신을


아이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어른까지 자라온 그대를


문득 사랑한다, 고 느낀다



운명은 이미 그대를


인정한 게 아닌가, 운명을 넘어설 자라고


그 많은 밤을 결국 다 건너왔다고



그러니 감히, 그대를 깊은 자라 칭해본다


더 깊은 곳까지, 더 높은 곳까지


가실 자라 불러본다




내 길의 옆에서 힘차게 달려와 준 그대가


고맙다


이름도 모르는 그대여,


그대라는 영혼을 사랑한다,



글이라는 전류를 통해


당신이란 영혼과 닿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 그림 - 박향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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