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기는 언니가 꼭 뛰세요!
코로나19 때문에 쉬었던 탁구를 다시 시작했다. 기본기를 배울 때 멈춘 터라 난 초보 아닌 초보였다. 레슨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본 동작조차도 어설프다.
규정이 바뀌어 제주생활체육 탁구는 여자 9부, 남자 8부로 시작한다. 1부 정도면 거의 선수급이다. 탁구장 관장과 코치가 1부다. 11월 첫 주, 거의 1년 넘게 못간 탁구장에 가니 나와 같은 9부 멤버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연습 중이었다. 처음부터 배우는 속도가 달랐던 터라 1년여의 공백은 나와 동료들과의 실력 차를 더 벌려놓았다.
11월 27일과 28일에 대회가 있다고 했다. “언니, 대회 나갈 거죠? 대회 나가야 연습도 되고 실력도 늘어요. 나가세요!” 팀원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동안 소원했던 탁구장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하기로 했다. 27일은 직장 일로 참여하지 못하고 28일 단체전만 함께하기로 했다.
탁구 단체전은 ‘2단 1복’으로 이루어진다. 단식 게임 2번, 복식 게임 1번 한다는 의미다. 9부에서는 4개 팀이 출전하는데 두 팀은 잘하는 팀이었고 나머지 한 팀은 해볼 만했다. 단체전에는 최소 3명이 출전해야 하는데 우리 팀은 나를 포함해 5명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게 있다. 태권도 대회에서 승급 심사를 통과해야 빨간 띠, 검은 띠를 따는 것처럼 탁구도 자신의 부수를 올리려면 개인전 대회에서 우승이나 준우승을 해야 한다. 단체전에서 승리해 점수를 얻게 되면 점수가 모여 승급할 수도 있다. 까마득한 초보라 애당초 그런 규칙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승급을 위한 실력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만큼 관심도 있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1년 넘게 대회가 개최되지 않아 진작에 승급했을 사람들이 하위 부수인 9부에 머물러 있었다.
대회 신청을 하고 연습이 시작되자 한 동료가 말했다. “언니!, 언니는 이번 경기는 연습 삼아 나간다고 생각하시고 제일 약한 팀이랑 할 때 첫 단식만 한 경기 뛰세요. 복식은 저희가 할게요.” “응, 알았어”. 복식을 연습해 봤지만, 번번이 나 때문에 점수를 준다는 걸 알기에 피해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단식만 나가는 거라 혼자 서브 연습을 했고 나머지 4명은 2명씩 짝지어 복식을 연습했다.
드디어 경기가 열렸다. 우리 팀은 제일 약한 K 팀과 첫 경기를 할 줄 알았는데 제일 센 팀과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에 나가는 선수 전체 명단은 공개되지만, 누가 단식, 복식을 나갈지는 경기 직전에 서로 눈치를 보면서 종이에 적어낸다. 3번의 경기 중 내리 2번을 지면 3번째 경기는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제일 잘하는 사람을 첫 게임 주자로 내보낸다. 상대 팀은 전날 개인전 준우승자를 첫 단식 주자로 내보냈다. 우리 팀원이 나갔지만 졌다. 우리 팀 복식조도 졌다. 단-복-단의 3번 경기에서 내리 2게임을 져서 3번째 경기는 진행되지 않았다.
다음 상대도 강력한 팀이었다. 전날 개인전 우승자가 첫 단식 주자로 나왔다. 역시 우리 팀원이 끝까지 따라붙었지만 졌다. 우리 팀 다른 복식조도 졌다. 이번에도 역시 내리 2게임을 져서 3번째 경기가 진행되지 않고 끝났다. 마지막은 상대적으로 약한 K 팀과의 경기였다. 예정대로 난 첫 단식경기를 대비해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이란다. 이번에 지면 4팀 중 꼴등이 되니 긴급하게 순서를 바꿔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순간 온 신경이 쭈뼛 섰다. 두 번째 순서인 복식이나 세 번째 단식에 나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미 복식조는 호흡을 맞춘 팀원들이 있었고 아무런 연습 없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 이상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 순간 난 커다란 짐덩이가 되있었다. 나 때문에 순서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팀원들을 봤다. 난 우리 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순간 누군가 말했다. “언니가 3번째 경기에 뛴다고 해도, 우리가 앞에 두 경기 모두 지면 이번에도 3번째 경기는 못 할 텐데, 그럼 언니는 오늘 한 게임도 못 뛰어 보는 거잖아요. 관장님이 무조건 언니를 K랑 할 때 첫 번째 넣으라고 했잖아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래요, 우리 처음 하려고 했던 대로 나가요. 다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게 의미 있는 거니까, 지금 순서를 바꾼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언니! 나갈 준비하세요. 치고 싶은 대로 맘껏 치세요. 자신있게 치세요”
"응, 알았어" 팀원의 말에 담담히 대답했다.
바닥을 친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기는 경기를 위해 고민했다.
정말 맘껏 치고 싶었다. 남들처럼 ‘탁’ ‘탁’ 소리 나게 시원시원한 동작을 하며 날아다니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먼 거리는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나 브라질까지 거리가 아니다. 내 키보다 작은 탁구대의 폭 152.5cm 거리다. 탁구대 폭이 얼마나 먼지 공이 다른 쪽으로 날아오면, 미쳐 내가 도착하기 전에 공은 지나가고 없다. 발바닥도 땅에 붙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11점을 먼저 얻으면 이기는 경기에서 1세트, 2세트가 순식간에 끝났다. 마지막 3세트다. 뒤에서 팀원들의 응원 소리가 들린다.
“무서워할 거 없어! 그냥 하던 대로 해! 너 잘하는 거 있잖아! 연습할 때처럼 그렇게 때려봐!” “언니! ‘화 서브’로 낮게 주세요. 다시 화로 돌아오면 받을 수 있잖아요. 상대 공격 세지 않아요. 할 수 있어요.” 그제야 말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어차피 질 거, 공이라도 쳐보고 지자’ 연습 때 서브처럼 낮게 들어갔고, 어설프지만 공격도 했다. 상대방의 실수가 아니라 내가 얻은 점수가 올라갔다. ‘내가 점수를 낼 수 있구나!’ 그렇게 몇 점을 얻었지만 이미 상대와는 점수 차가 벌어진 뒤였다. 열기가 채 오르기도 전에 경기는 끝났다. 1, 2세트와 3세트는 다른 내가 경기 한 거 같았다. 초반엔 밋밋했다면 마지막 세트는 짜릿했다. 이미 3세트 연패로 경기는 끝났지만, 난 여전히 라켓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쉬웠다.
우리 팀은 뒤이어 치러진 복식과 단식에서 우승 하며 단체 3등이 되었다.
화장대 거울 앞에서 빈 몸으로 동작을 연습할 때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신한테 맞는 운동이 꼭 탁구가 아닐 수 있어. 그렇게 안 되는 거 힘들게 하지 말고 다른 운동을 찾아보는 건 어때?”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난 탁구가 좋아”
‘공백기가 없었다면 동료들처럼 잘할 수 있었을까?’ 지금보다 나아지긴 했겠지만, 그들만큼은 아닐 거다. 두 발은 바닥에 붙어있고 허공에 팔만 허우적대는 허수아비 같은 내가 그려진다. 언제나 파이팅을 외치며 탁구장으로 향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외침은 사그라들고 난, 소인국 사람이 된다. 자신감은 실력과 비례하고 그것은 의식적 연습에 달렸다. 내 실력이 걸리버가 되는 순간까지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을 견뎌낼 용기와 끈기도 필요하다.
12월 개인전에 나가는 나를 위해 우리 팀 언니, 동생들은 모두가 나의 개인 코치다. 서브와 리시브를 돌아가며 연습하기도 하고 기본기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을 피드백해 주기도 한다. 다른 고수분은 내가 할 줄 아는 서브가 2개뿐인 걸 알고 1,2,3 서브 법을 가르쳐 준다. 한글만 까막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난 탁구 까막눈이다. 상대방의 서브를 읽지 못한다. 내 눈을 뜨게 하려고 도움을 주는 고수분도 있고 시간만 되면 같이 쳐주는 고수분도 있다.
바닥까지 내려간 기분을 끌어올려 다시 탁구장으로 향한다. 다시 마음속 파이팅을 외치며 구장문을 연다.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언니! 이번 경기는 중요하니까 첫 게임은 언니가 나가야 할 거 같아요.”
그날까지 발바닥 닳게 움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