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승 한 시간 만에 계약하다

by 새라

난 40대 제주도 아줌마. 제주도 전역을 자유자재로 드라이브하는 자칭 베터랑 드라이버다(솔직히 주차는 좀 약하다). 핸들을 잡은 지 25년 만에 내 차가 생겼다. 내 명의의 자동차는 2대나 있고, 그 차를 타고 다니기도 하지만 '내돈내산'은 아니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차로 나는 매일 달렸다. 하루 100킬로, 세 시간의 운전. 직장도 멀었지만, 아이 학교도 멀어서 출근길에 아들을 학교까지 실어 날라야 했다. 장거리 주행 덕에 엑셀을 밟아대는 오른발과 오른쪽 엉덩이 근육은 늘 피곤하고 뻐근했다. 엉덩이뿐인가, 허리도 목도 피곤하다고 난리였다.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잠시 차를 세워 구부정해진 허리를 펴곤 다시 운전대를 잡아 회사로 향하는 게 나의 아침 루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가 고장 났다. 육지에서 부품이 도착할 때까지 빌린 차를 타야 했다. 코나 SUV 전기차. 지금까지 승용차만 탔던지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시원했다. 그뿐인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무더위 속에서도 차 안은 쾌적했다.


고장 난 내 차는 초창기 전기차라, 완충해도 멀리 가지 못한다. 에어컨이라도 자유롭게 틀자면 매일 충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늘어나더니 500킬로까지도 간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에어컨도 시원하게 맘껏 틀고, 장거리 운행도 거뜬한 가성비 좋은 전기차인 것이다. 제주에는 곳곳에 전기차 충전기가 있고 주차요금 감면 등 친환경 차량 혜택도 좋다. 그래서인지 제주에서 파란색 번호판의 전기차는 흔히 보인다. 제주는 전기차의 홈그라운드다.


가끔 자동차 딜러에게 문자가 왔다. 평소 대충 읽고 넘어가는데 그날은 달랐다. 전기차 초기비용 200만 원, 월 19만 원대.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긴 문자 끝에 ’모두 보기’를 눌렀다. ‘말이 돼? 차값이 얼만데. 10년 할부인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도 또 한 번 놀랐다. 3년간 할부 금리가 1.8%라니! 높은 금리 차량 할부가 많은데, 가려운 곳을 재빠르게 긁어 주는 문자였다. 바로 시승 일정을 잡았다. 내가 고른 차량은 2025년형 코나 전기차.


시승이 시작됐다. 기어는 항상 오른쪽 옆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핸들 아래에 있다. 거기다가 돌리는 버튼이다. 운전석 앞 모니터도 널찍한 것이 시야가 확 트인다. 화면에 보이는 지도도 시원하다. 출퇴근만 한다면 주말에만 충전하면 된다. 1시간의 시승이 끝났다. 고민할 시간을 아끼기로 했다. 바로 계약했다.


차량 도착 전에도 할 일은 많았다. 할부를 위해 캐피탈에도 가입하고, 충전용 앱과 차량 관리 앱도 깔았다. 등록번호를 받기 위해서는 보험 가입도 해야 했다. 딜러가 제주에 차가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만남의 날. 먼 곳에서 봐도 한눈에 파란색 번호판이 달린 흰색 차량이 광채와 함께 눈에 쏙 들어왔다. 센스있는 딜러의 배려 덕분에 고급진 선팅과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었다. 매일의 100킬로, 3시간을 함께 할 나의 첫차가 내 눈앞에 있었다.


드디어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석이 쿠션을 덧댄 듯 편안하다. 전면의 시야도 손을 뻗으면 바람이 잡힐 듯 또렷하다. 오른발이 사뿐하게 페달을 밟는다. 쭉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에서 새 차의 향기가 느껴진다. 달리면서 창문을 쭉 내렸다. 30도가 넘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금세 차 안을 덮었다. 그래도 시원하기만 하다. 이제 나는, 매일의 100킬로를 ‘진짜 내 차’와 함께 달린다. 등굣길 뒷좌석에서 곤히 잠드는 아이만큼이나 소중하게 조심히 페달을 밟아 보리라. 아이도 편안하게. 내 차도 편안하게. 그리고 나는, 더 편안하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주방의 명품, 로켓 요리를 위한 유리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