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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방의 명품, 로켓 요리를 위한 유리그릇

by 새라

우리 집에는 몇 년 전까지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신혼살림으로 장만했던 전자레인지를 첫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눔 했다.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일념 아래, 아기 먹거리에 예민하게 집중할 때쯤, 전자레인지의 부작용을 다룬 기사를 보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자레인지는 집에서 바로 사라졌다. 느린 요리사가 될 것이 뻔했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삶고, 끓이고, 데쳐서 먹이면 될 터였다. 아이를 위한다면 그 정도 불편함이야 능히 감내해야 할 거 같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방학이 되면 나는 더 분주해졌다. 방학 동안 점심에 먹을 도시락을 준비하고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나름 엄선한 재료로 정성껏 도시락을 쌌다. 퇴근 후, 식탁 위에 반쯤 먹다 만 도시락을 보며,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무너진 건 아이들이 초등학교 3~4학년쯤부터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편의점의 편리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편의점으로 몰려가 삼각김밥이나 사발면을 사 먹었다. 속상했다. 그러던 중 친정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혹시 전자레인지 필요하니? 이번에 정수기 교체했더니 사은품으로 받았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제가 가져갈게요.”


우리 집에 전자레인지가 들어왔다. 평상시 거들떠보지도 않던 냉동 식자재들이 하나씩 냉장고에 쌓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입맛에 맞게 냉동실 음식을 꺼내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며 능숙하게 사용했다. 설명서 따윈 필요 없었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친구처럼 전자레인지는 친숙했고, 우리 집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점심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었다. 시간도 생겼고, 몸도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냉동실에서 주먹밥을 꺼낸다. 포장을 약간 찢어서 전자레인지에 3분 돌린다. 뜨거워진 비닐 포장 끄트머리를 잡아 조심스럽게 꺼낸다.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닐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다음번에는 포장을 다 벗기고 그릇에 넣었다.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투명 랩을 씌웠다.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이번엔 조리용 장갑을 끼고 뜨거운 그릇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수분이 송골송골 맺힌 쪼글 거리는 랩을 벗겼다. 역시 이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랩 대신 뚜껑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이왕이면 플라스틱보다 도자기 재질이면 더 낫지 않을까?’ 손가락 바쁘게 검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찾았다. 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줄 최고의 명품 전자레인지용 그릇. 아이 한 명분, 1인분 데우기용 최고의 소분템. 그리고 먹다 남은 것도 그대로 냉장고에 직행할 수 있는 바로 그것. 직관적으로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투명한 유리그릇. 로켓 요리를 위한 명품 그릇.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필요에 전자레인지를 선택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의 불편함을 유리그릇과 나눠 갖기로 했다. 이제는 냉동 음식뿐만 아니라, 냉장고에 들어갔던 음식을 데우는 것도 명품 그릇이 도맡아 한다. 투명해서 속이 보이기에 사과를 깎아 유리 뚜껑을 덮어두면 아이들이 오가며 하나씩 먹는다. 옥수수도 잘라서 넣어두면 어느새 퇴근 후 사라지고 없다. 방학 기간 늦잠 자는 아이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 유리그릇 두 개에 담아두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들이 하나씩 먹을 수 있게 말이다.


얼마 전 사무실로 유리그릇을 불렀다. 혼자 사는 직원을 위한 특별 선물이었다. “이건 로켓 요리를 위한 필수품이야. 1인 가구에 딱이지. 그 어떤 명품 그릇보다 쓸모 있을걸. 내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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