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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들은 모르는 엄마의 기름떡

by 새라

제주에서는 명절이나 제사 때 기름떡을 상에 올린다. 나와 같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다. 육지에 사는 지인들에게 “저는 친정 엄마가 만들어주는 기름떡이 제일 맛있어요.” 라고 했더니 “기름떡이 뭐에요?” 하고 되려 묻는다. 당황스럽다. “기름떡요? 그거 있잖아요. 명절 때나 제사 때 상에 올리잖아요. 찹쌀 반죽해서 기름 잔뜩 넣어서 후라이팬에 익힌 떡요” 열심히 설명해보지만 그녀들은 좀처럼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보다. 누군가는 진달래화전 같은 거냐고 물어온다. 이럴수가, 내가 즐겨먹는 기름떡이 제주 토속음식일 줄이야.


어린 시절 할머니는 참기름을 ‘참지름’, 기름떡을 ‘지름떡’이라고 하셨다. 그 시절 나는 할머니가 연세가 드셔서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커서야 ‘지름’이 제주방언으로 ‘기름’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기름떡’은 제주도 토속음식 ‘지름떡’이다. 마을 행사 때나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나눠먹던 제주전통음식.


제주의 기름떡은 그 이름에 걸맞게 후라이팬에 기름을 듬뿍 두르고 익혀야 한다. 별떡(별모양의 틀로 반죽을 찍어내서 그런거 같다)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테이크아웃 컵 홀더 정도의 크기다. 꽃잎을 붙이는 화전보다 더 도톰해서 쫀득한 식감이 풍성하다. 어린 시절 나는 기름떡을 자주 먹었다. 엄마는 찹쌀을 물에 불려서 방앗간에서 갈아와서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그리곤 한두 살 터울로 올망졸망 넷이나 되는 아이들의 간식으로 종종 하얀 가루를 꺼내 쓰곤 했다. 지금도 친정에 간다고 하면 엄마가 묻는다. “기름떡 해줄까?” 그러면 나는 주저 없이 냉큼 대답한다 “네, 좋아요”


엄마가 기름떡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나름의 체계가 있다. 냉동실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꺼낸다. 작은 수박이라도 들었을 만한 크기다. 그 속에는 성근 찹쌀가루 덩어리가 있다. 엄마는 양손으로 덩어리진 찹쌀가루를 양푼에 부수며 덜어내서는 작은 덩어리들을 사부작사부작 비비며 알알이 곱게 한다. 팔팔 끓은 물을 가루에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치댄다. 뜨거운 물을 부으며 반죽하는 것을 익반죽이라고 하는데 그 덕분에 흩날리던 가루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찬물과 달리 익반죽하면 글루텐이 없는 찹쌀가루도 밀가루처럼 점성이 생겨서 반죽이 쫀쫀해지고 밀어도 덜 찢어진다. 거기다가 반죽을 익히면 쫄깃쫄깃 제대로 찹쌀떡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금방 만든 기름떡을 먹을 때, 쭉 늘어나는 모짜렐라 치즈가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능숙한 손놀림 속에 드디어 두 손으로 잡아야 할 찹쌀 반죽 덩어리가 완성된다.


엄마는 넓적한 도마 위에 찹쌀가루를 조금 뿌린 후 손으로 쓱 쓸더니 그 위에 반죽을 올리고 밀대로 민다. 너무 얇지도, 너무 두껍지도 않다. 별 모양 틀로 최대한 개수가 많이 나오게 떡을 찍어낸다. 남은 반죽을 모아서 다시 찍어낸다. 이제 프라이팬에 기름을 듬뿍 두르고 기다리는 건 내 몫이다. 난 기름떡을 잘 익힌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붓고 서로 붙지 않게 담아 넣는다. 프라이팬에 빙그르르 둘러가며 하나씩 놓고 가운데에 하나를 넣으면 한 번에 6~7개가 들어간다. 이때 반죽이 서로 붙지 않게 해야 한다. 단순히 중불에서 익히면 그만일 거 같지만 노릇함의 깊이를 봐가며 가끔은 불을 세게도 해야 한다. 잠잠했던 프라이팬이 지글지글 바빠진다. 하얗던 찹쌀 반죽이 노릇하게 익어가며 부풀기 시작한다. 이스트를 넣은 빵 반죽처럼 부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처음 반죽 높이보다 약간 도톰한 정도지만 기름과 섞여 내는 풍미는 버터 향 가득한 빵 냄새 저리가라다. 앞뒤를 뒤집어 가며 익힌 노릇함의 색감이 마음에 쏙 들 때면 넓은 그릇에 서로 붙지 않게 가지런히 놓는다. 기름떡이 적당히 식으면 설탕을 앞뒤로 묻혀 통에 하나씩 차곡차곡 담는다. 설탕을 골고루 잘 묻혀야 기름떡끼리 서로 붙지 않는다. 떡 하나를 그릇에 넣고 다른 하나를 내 입에 넣는다. 뭐든 만들면서 먹는 게 제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름떡이 육지 사람들에겐 낯선 제주의 토속떡이라는걸 알고 나니, 엄마의 솜씨를 서둘러 전수받고 싶어졌다. 어깨너머 슬쩍 배웠지만, 누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뚝딱하고 만들어 줄 수 있는, 기름떡의 명인이 되고 싶다. 요리는 서툴지만, 기름떡 만큼은 자신 있게 꺼내 놓을 날을 상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없는 게 빼고 다 있는 편의점을 끼고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마표 기름떡을 선물해주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간식이지만 편의점에서 찾을 수 없는 그런 ‘기름떡’의 추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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