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달 가운데 마음도 몸도 유독 바쁜 달을 꼽으라면 나에게는 단연코 12월이다. 늘 보는 얼굴들인데도 연말이면 누군가 말을 꺼낸다. "우리 얼굴 봐야지" '얼굴은 지난번에도 봤잖아요'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쑥 나오다가도 서둘러 스케줄을 확인한다. 그래, 이게 사는 재미지.
묵혀둔 집안일도 있다. 내가 언제 계획했던가? 올 초였나? 베란다도, 옷장도, 신발장조차 정리해야 할 것투성이다. 멀쩡하던 주방 선반 위 그릇들도 제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정이 없는 주말에 오롯이 혼자 정리해야지 마음먹었던 게 이미 한 해 끝자락이다. 연휴가 긴 일정 중 하루를 잡아 정리하려 했지만 어째 그런 날마다 예기치 못한 약속이 생긴다. 나에게 휴일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날일 뿐 나를 위해 비워두는 날은 아닌 듯하다.
12월 다이어리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한 달을 일 년처럼 알차게.' 일 년 동안 미뤄온 일들을 한꺼번에 해치우겠다는 다짐이었다. 꽉 찬 하루를 만들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퇴근길에 탁구 레슨을 받고 집에 돌아와 슈퍼우먼처럼 빠르게 집안일을 해낸다. 기숙사에 있는 아이가 돌아오는 전날이면, 나보다 일찍 집에 올 아이를 위해 엄마표 저녁거리도 준비해야 한다. 취침시간은 매우 중요하기에 평일 저녁에 그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주말에 할 일 목록을 적어본다. 집안 정리, 음식 만들기, 쌓아 둔 책 읽기, 글쓰기, 친목 도모, 탁구 연습, 피부관리, 부모님 댁 방문. 간단한 한 문장이지만 하나하나 풀어내면 A4 몇 장은 족히 될 일들이다. 하루하루를, 내가 나를 쫓으며 지내고 있다.
“여유는 누가 주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레슨 때 코치가 했던 말이다. 탁구공이 내 앞에 오기도 전에 라켓이 먼저 나가고, 먼저 나가 빨리 친 공은 내가 미처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되돌아오고, 그 공 때문에 또 급해지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나에게 해준 말이다. 여유는 가지려고 하면 생긴다고.
그 말은 탁구에만 적용되는 건 아닌 거 같다. 해야 할 일을 두고 머릿속으로 걱정할 시간에 일단 시작하고 마무리하면, 그게 여유인 것을. 마음먹은 일들을 해내지도 못하고, 미뤄둔 시간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시간의 이중고를 겪고 있으니 여유가 남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12월은 올해의 마지막 달이자, 새해의 바로 전 달이다. 어수선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내일이 있다는 거, 내년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받는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감사하자. 아직 12월이다. 나의 일상도, 나의 탁구도 내가 만든 여유 속에서 삶의 박자와 공의 박자에 맞춰 한 걸음씩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