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마지막 일요일, '친선탁구 명랑 운동회’라는 이름으로 3개 탁구장 회원 간 운동회가 열렸다.
첫 경기 상대는 예전 대회에서 이긴 적 있는 다른 구장회원이었다. 그녀는 다소 건강한 체구였지만 연륜과 구력이 느껴졌다. 그녀가 내 탁구대로 멋지게 보낸 공은 어려워서 못 받았고, 어설피 들어온 공은 나도 어설프게 넘기다 점수를 내줬다. 세련되지 못한 공에 어정쩡하게 점수를 내주는 건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상대는 이쪽저쪽으로 공을 뺐다.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 상대 플레이에 말려 정신만 없어졌다. 누가 봐도 몸은 내가 더 가벼워 보였지만 움직이는 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5세트까지 갔지만 졌다. 역시 경기는 그때그때 달랐다.
나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상대를 모두 이기고 마지막 경기에 지면서 6명 중 3위가 됐다. 하위 부수인 오름부 개인 단식 우승은 나의 첫 상대인 그녀가 차지했다. 명랑 운동회는 단체전도 있었다. 동호회 구분 없이 골고루 섞여 6개 팀으로 구성됐다. 팀원 모두가 제 몫을 해줘야 하는 단체전에서 그녀의 팀이 6개 팀 중 우승을 차지했다. 명랑 운동회는 그녀의 날이었다.
행사가 끝난 저녁 식사 시간, 우리 테이블로 우승한 그녀가 왔다. 가까이서 본 그녀는 피부가 뽀얗고 인상도 좋은, 고운 분이었다. “우승 축하드려요! 공을 잘 다루는 거 같던데 탁구 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내가 물었다. “4년요” 뜻밖이었다. 연륜과 구력을 말하기에는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그때 옆자리 다른 이가 우리에게 물었다. “여기 언니 나이가 몇 살로 보이세요?” 주인공인 그녀가 옆에서 웃고 있었다. 아무리 뽀얀 피부가 나이를 감추려 해도 족히 60세는 되어 보였다. 골든벨 퀴즈가 아닌 이상 나이를 정확하게 맞추는 건 분위기에 도움이 안 된다. “55세? 56세?” 살짝 낮춰 말했다. 주위가 환해졌다. “이 언니 70세요” “네? 70요” 할 말을 잃었다. “여기 분들은 나이가 어떻게 돼요?” 그녀가 물었다. 내 나이를 말하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랑 똑같네”
우리가 놀란 건 탁구만이 아니었다. 15년 전 자전거를 배웠다는 그녀는 매주 토요일 사이클 동호회 사람들과 제주 해안도로를 수 킬로미터 달린다고 했다. 순간 난, 예전 남이섬에서 자전거를 못 타 뚜벅이로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경이로운 그녀였다. “그럼 55세에 자전거를 배워서 지금까지 타고, 탁구도 60대에 배워서 대회도 나가시는 거네요. 정말 멋지세요.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요란스레 감탄을 연발하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매일 치지요, 탁구장에 가면 나랑 쳐 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럼 고마워서 밥도 사고 막걸리도 사고하지. ‘60세만 됐어도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은 해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픈 곳도 많아지고 방전도 빨라진다. 시간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고, 어른을 자연으로 돌아가게 한다. 우리는 시간을 막을 수도 싸워 이길 수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며 살고 있었다. 어제가 오늘 같은 반복된 일상에 묻히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였다. 그녀가 고와 보인 건 뽀얀 피부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열정과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녈 만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나이를 숫자로 만드는 비결을 오늘 배운다. 그녀가 바란 60세도, 그녀의 아름다운 70세도 아직 내게는 오지 않은 숫자다. 그녀가 지금 느끼는 기분과 행복, 그리고 그녀의 선한 영향력을 미래의 나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나 역시 느리지만, 꾸준히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길 바란다. 그 시간 속,따뜻한 울림의가치를 삶에 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