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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Feb 26. 2023

스키장에서 웬 탁구?


난 운동을 싫어한다. 겨우 붙잡고 있는 게 탁구다. 그런 내가 겨울이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이들을 위해 스키장에 간다. 아이들 옆에 있기 위해 레슨도 받아가며 스키를 탔다. 정말이지 나와 맞지 않다고 매번 느끼면서도 말이다. 큰애는 즐기는 스키를 한다. 그녀의 겨울은 짜릿하다. 경사가 급하다는 무주 스키장도 재밌다고 난리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나를 닮은 둘째는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스키를 타다 대학생 누나와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다. 그 뒤로 아들은 스키를 타지 않았다. 우리 부부도 상대와 보험문제로 통화하며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에 더는 스키를 반기지 않았다. 코로나 역시 우리 부부에게 방학 숙제를 미룰 정당한 이유를 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몇 년간 스키장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큰애의 성화에 오랜만에 시댁 식구들과 스키장으로 향했다. 장소는 김포공항에서 이동이 편한 홍천 비발디파크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개장시간을 기다리며 지하몰로 내려갔다. 예전 카페와 식당들은 몇 군데 그대로였지만 아들이 어릴 적 놀던 게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눈에 들어온 것은 당구장과 탁구장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여행 가방을 꾸리며 탁구라켓을 만지작거렸던 나다. ‘혹시 모르니까 넣고 갈까?’ 혼자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스키장에 무슨, 이것도 병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 ‘탁구장’ 이 나타난 거다. “30분만 탁구치고 가요, 아직 시간도 남았는데” 내가 말했다. 가족들 모두 반응이 없었다. 대답한 유일한 한 사람, 3월이면 중2가 되는 아들이었다. “좋아요, 탁구 쳐요”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탁구장에 다녔다. 어렸을 때 배워두면 나처럼 힘들지 않을 거란 생각에 갖은 꼼수를 써 탁구장에 등록시켰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만 다니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으로 레슨이 끝나면 아이가 좋아하는 자판기 음료를 마실 수 있게 관장님과 살짝 모종의 협의를 했다. 다행히 자판기 덕분에 몇 달 더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자판기의 위력이 떨어질 때쯤 아들의 탁구 레슨은 끝이 났다.      


지하몰 탁구장에서 시댁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탁구경기가 열렸다. 시댁에서는 몇 년째 레슨 받으며 탁구장에 다니는 나를 ‘탁구 잘 치는 며느리’로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겸손의 표현이라 그들은 믿었다.    

 

싫으면 절대 안 하는 그 무섭다는 중2 아들이 ‘빨리 집에 가자’라는 말 대신 ‘탁구 치자’는 말을 하다니. 신이 났다. 아들이 라켓을 제대로 잡았다. ‘역시, 배운 탁구는 좀 다르군’ 흐뭇했다. 공을 넘겼다. ‘어라’ 느낌이 온다. 동네 탁구다. 라켓만 잡을 줄 알았을 뿐 아들의 공 넘김은 ‘막 탁구’였다. 레슨의 위력은 여기까지였다. 문제는 나다. 3년의 배운 탁구가 아들의 막 탁구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내가 그럴듯한 자세를 잡아보지만 역시나 이쪽저쪽으로 날아오는 아들의 공을 막을 방법은 없다. 막 탁구든 정석 탁구든 내 다리가 공을 못 쫓아가는 건 똑같았다. 뒤쪽 벤치에는 시댁 식구들이 줄줄이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아들은 2배속으로 빠르게 공을 후려쳤고, 난 0.5배속으로 천천히 자세를 잡고 있었다. 내가 공 받을 자세를 하면 공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들의 공을 사뿐히 받아서 넘겨줘야 그럴듯한 모양이 될 텐데.      


결국, 2대 1로 아들에게 졌다. 아들의 공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내가 보내고 싶은 공을 아들은 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날아오는 아들의 공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공 때리는 느낌은 좀 아는걸’ 뭘 해도 예쁜 아들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듯했다.      

손위 시누이가 웃으며 물었다. “탁구장 다니는 거 맞아? 자세는 좋은데 공치는 건 좀 그러네. 져준 거지?” ‘져준 거냐고? 설마요. 그것도 실력이 돼야 할 수 있어요. 전부 제 실력이었어요.’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기 전에 얼른 내가 말했다. “네, 그런 거로 할게요” 


편안하게 공을 받고 살짝 넘겨주는 여유 있는 ‘엄마 탁구’를 꿈꿔본다. ‘아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네가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 엄마 탁구‘를 보여주마’     


계획 없이 뜬금포로 들어온 탁구장에서 우리 가족은 스키장에서의 첫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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