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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라 Mar 05. 2023

그녀를 향한 러브레터

내 탁구 소울메이트 11층 그녀

“어차피 여기서 우리보다 탁구 못 치는 사람은 없어. 그냥 막 쳐. 져도 되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녀와의 인연은 2011년 아파트 입주 후 아래 위층으로 시작됐다. 나는 10층 그녀는 11층. 그때 그녀와 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면 새초롬하게 인사했다. 어느 날 현관 앞에 검정비닐이 놓여있었다. 들춰보니 채소였다. 시골에서 보낸 것을 신선할 때 나눠 먹을 생각에 그녀가 나눔을 한 거였다. 뜻밖이었다. 그 뒤로 그녀와 마주칠 때도 여느 때처럼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디 가시나 봐요?”, “예, 일이 있어서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우린 그런 사이였다.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 어느 날 그녀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이사했다. 아쉬웠다. 하지만 어른들의 생활이 그렇듯 그뿐이었다.     


저녁에 사람들이 하나둘 탁구장에 모여들기 직전, 조용한 시간 나는 레슨을 받았고 기계와 스윙연습을 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사람들과 마주침 없이 혼자만의 기계 탁구를 한 지 몇 달, 어쩔 수 없이 저녁 7시가 넘어 잡은 보강 레슨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그때 그녀도 나와 같은 탁구 초보였다. 누군가 ‘툭’ 건드려 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파이팅이 지쳐 사그라져 가는 내 탁구를 깨웠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한 탁구 생활이 3년이 넘어간다. 그런 그녀가 25년의 제주 생활을 마무리한다. 그녀의 인생 1막은 부산에서 시작됐다.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다 남편을 만났고 서로 의기투합해 25년 전 제주로 내려와 정착했다. 인생 2막인 제주에서 첫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은 버젓한 사업가가 되었다. 이제 그들 부부는 시간을 쪼개고 쉴 새 없이 움직인 보람으로 자발적 사업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인생 3막은 서울에서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녀는 서울행 비행기를 탈 D-DAY를 앞두고 있다.     

                         

처음 탁구장에서 나를 보고 ‘탁구 시작한 지 한 달은 된 거 같네!’라고 말하며 신나게 웃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가까이 살 땐 서로가 말 걸기 어려운 차가운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를 떠올리면 스치는 장면이 있다. 호시탐탐 공 때릴 기회를 포착하려 공에서 눈을 안 떼는 그녀, 상대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는 그녀, 공간이 빈 곳으로 자연스럽고 날카롭게 공을 보내는 그녀, ‘뭐 어때! 그냥 쳐! 잘하고 있어!’ 게임 때마다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걸어주는 그녀.     


그녀의 몸짓과 목소리의 울림이 마음 깊이 판화로 찍혀 그녀를 기억하게 할 거다. 게임에 지고 공이 마음처럼 안 들어가 기운 빠져 있을 때도 “그래도 옛날보다 많이 늘었다. 너 잘하고 있어.” 응원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는 그녀.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 믿고 함께 움직였던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      


내가 어떤 일할 때 신이 나는지, 어떤 때 과감해지는지, 무엇에서 보람을 느끼는지 알려준 그녀다. 떠날 날이 가까워질수록 구장에서 연습이 끝나도 그녀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온 날, 여느 연인 못지않은 찐한 문자가 왔다.      


‘잘 자 내 꿈 꿔~ 나랑 게임해서 3빵으로 니가 이기는 꿈’   

  

사랑스러운 그녀의 문자였다.

‘언니!, 몇 년 있다, 다시 제주에서 인생 4막을 보낼 거라 했지요, 제가 꿈 말고 진짜로 보여줄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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