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초보 그룹인 오름부 폭파를 위해서는 단체전 우승이 필요하다. 일단 단체전 우승으로 세 명이 승급점수를 받는다. 개인전에서 모두 8강에 올라가 승급점수를 보탠다. 세 명이 동시에 오름부에서 금강부로 승급한다. 우리의 야심 찬 초보 탈출 시나리오를 위해 오름부 여자 셋은 주말마다 탁구장으로 출근한다.
<제주시 탁구협회장배 탁구대회>가 열렸다. ‘제주도’ 대회는 있었지만, 코로나로 잠잠했던 ‘제주시’ 대회였다. 탁구용품 전문기관 협찬으로 5만 5천 원에서 8만 5천 원까지 하는 러버가 자그마치 200장이나 경품으로 등장했다. 러버는 탁구라켓 나무에 붙이는 검은색이나 빨간색 고무인데 닿거나 흠집이 생기면 교체하는 탁구 필수품이다. 엄청난 경품에 대회의 재미가 더해질 것은 분명했다. 우리는 10월에 있을 승급대회를 앞두고 중간점검 차원에서 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
개인전 대진표가 나왔다. 세 명 모두 다른 조다. 예선은 리그전인데 조 1, 2위가 본선에 진출한다. 우리 세 명이 예선 조 1위를 한다면 본선에서 최대한 나중에 만날 수 있다.
우리 팀 오른손 에이스, 조 1위로 본선 진출!
우리 팀 왼손 에이스, 조 1위로 본선 진출!
오름부장, 나, 조 2위로 본선 진출 확정!
나의 본선 진출이 대단해 보이지만, 탁구에 입문한 지 채 5개월이 안 되는 초초보 회원을 이기니 조 2위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뿐이다. 내가 조 2위가 되는 순간 우리의 시나리오는 틀어졌다. 나는 일찌감치 우리 팀 왼손 에이스를 만났고 3대 1로 패했다. 나를 이긴 우리 팀 왼손 에이스가 8강에 올라갔을 땐, 아! 그곳에는 우리 팀 오른손 에이스가 있었다. 오른손과 왼손의 대결에서 왼손이 승리했고 4강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공동 3위로 개인전을 마무리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단체전이 시작됐다. 단체 예선 역시 조 1, 2위 팀이 본선에 올라간다. 우리 팀이 속한 조는 두 팀만 있어 모두 본선 진출이었다. 상대는 개인전 우승자가 속한 ‘N 탁구’였다. 조 1, 2위 결정을 위한 경기가 시작됐다. 첫 번째 선수로 우리 팀은 왼손 에이스를 넣었다. 순서를 오픈하니 상대 팀 첫 번째 선수는 개인전 우승자였다. 여유 있게 공을 꽂아댔던 그녀. 왼손 에이스가 졌다. 두 번째는 나였다. 내가 이겼다. 세 번째 경기까지 진행됐다. 우리가 또 졌다. 1승 2패였다. 우승자가 있는 강팀이라고 생각하니 아쉽지도 않았다. 우리 팀은 조 2위로 본선에 올라갔다.
본선 올라갔을 때 그곳의 온도는 차갑지도 덥지도 않았다. 8강에서 ‘K 탁구’을 만났고 2승 1패로 우리 팀이 이겼다. 그런데 나는 졌다. 4강에서는 ‘S 탁구’를 만났고 또 우리 팀이 이겼다. 또 나는 졌다.
드디어 대망의 결승!
‘N 탁구’를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예선 첫 상대인 그 팀. 공을 읽는 능력자가 있는 바로 그 팀. 예선전 때와는 마음부터 달랐다. 이번 경기만 이기면 단체전 우승이다. 선수 순서를 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상대 팀에서 우승자를 몇 번에 넣을지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안전하게 가려면 적어도 1, 2번에는 넣을 터였다. 번호가 적힌 종이를 오픈했다. 우승자는 2번. ‘됐어!’ 우린 서로 눈을 맞췄다. 우리 팀 2번은 바로 나였다. 경기가 시작됐고 우승자는 내 서브를 바로 공격했다. 공격이 어렵게 짧게 주거나 낮게 줘도 다음 공을 탁구대 구석으로 살포시 내리꽂았다. 내 공이 어디로 올지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공을 받고, 날렵하게 공을 보냈다. 그녀의 동작은 간결했고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3세트 내리 지며 경기는 광속으로 끝났다.
옆 탁구대에서는 우리 팀 언니와 동생의 경기가 계속이었다. 동생이 먼저 1승을 가져왔고, 언니가 5세트까지 가는 쫄깃함 속에 마무리 1승을 더했다. 팀 점수 2승 1패로 우리 팀이 ‘N 탁구’를 이겼다. 오름부 단체전 우승이다. 그녀들에게 중간점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완벽한 결과였다. 나만 뺀다면 초보탈출 승급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이번 대회가 승급대회였다면 승급하는 거였나요?” 대회가 끝나고 탁구장 회원이 물었다. 오름부 언니가 말했다. “그렇지, 단체전에서 우승했고 개인에서도 점수를 받았으니까 오늘 두 명은 승급하는 거였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은 아닌 거야. 우리 세 명 같이 올라갈 거 거든. 오름부 폭파하려고.”
가만히 옆에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그시 힘주며 눈으로 말했다.
'초보 탈출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아직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