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형상의 마크가 있는 항저우 아시안 게임 탁구유니폼을 샀다. 상의 유니폼은 국내에서 판매되지만, 하의는 국내에 없어 해외배송으로 구매했다. 언제부터 내가 유니폼에 이렇게 진심이었을까?
코로나로 2022년에 개최되지 못한 아시안 게임이 올해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렸다. 19살의 탁구 삐약이 신유빈 선수와 왼손의 대표선수 전지희 복식조가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선물했다. 행여 내 들숨과 날숨이 우리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까 숨소리조차 차렷 한 경기였다. 2004년생 신유빈 선수는 어릴 적 탁구 신동으로 스타킹, 무한도전 등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꽤 이름이 알려진 탁구 요정이다. 마라탕을 좋아하는 고 1 우리 큰애와 세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으니 169센티미터의 큰 키도 내 눈에는 귀여워 보인다. 하지만 경기에 임할 때의 매서운 눈빛과 경기를 리드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자면 부럽기 그지없다. 숨죽여 경기를 보고 있으니 어느새 그녀의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다. 자주색에 핑크가 들어간 자칫 촌스럽게 보일 수 있는 유니폼이었다.
‘꼭 사야겠어!’ 앳되고 건강한 유빈양이 입어 예쁜 것일 테지만 내게 어울리건 말건 그 유니폼이 갖고 싶어졌다. 나비 형상이 박힌 유니폼. 생각만으로도 기분은 항저우 그녀 옆에 가 있었다. 그런데 삐약이의 매력에 빠진 건 나만이 아니었다. 탁구장 여전사 3명이 나와 함께 했다. 구장 한쪽에 앉은 여전사들은 탁구대를 응시하며 공의 회전원리와 공격의 상관관계 같은 진지한 주제를 논하는 듯 보였지만 가까이 와서 들어보면 이랬다. “상의는 S 사이즈가 맞을 거 같지?”,“그럴걸, 우리가 입는 유니폼이 거의 S 사이즈니까”, “아닐지도 몰라요, 이건 브랜드가 다르니까. 신유빈이 입은 사이즈를 알면 좋을 텐데”, “사이즈표를 봐도 잘 모르겠는데, S 할까? 2S 할까?, 3S도 있네”, “해외배송은 절대 교환하면 안 돼요. 배송료가 3만 원이 넘는데 교환하면 10만 원은 나올 듯해요”
진지한 협의 끝에 신중하게 선택한 사이즈로 인터넷 주문을 넣었다. 10월 초 임시공휴일과 개천절, 한글날 휴일이 겹치면서 해외배송과 국내배송이 하루 차이로 도착했다. 두근두근 언박싱! 거울을 보니 어째 상의가 좀 넉넉했다. 요새 많이 먹어서 그런지 배 주위가 편한 것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신이 나 거실로 갔다.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신랑에게 물었다. “주문한 신유빈 유니폼 왔어, 어때?”, “응, 괜찮네” 그의 성의 없는 대답도 진짜처럼 들렸다. 삐약이와 같은 유니폼을 입었다는 게 중요했다. 다음 날 구장에 입고 갈 생각에 냉큼 세탁기에 돌렸다.
여전사들에게 나눠줄 유니폼을 가방에 넣고 나는 당당하게 항저우 유니폼을 입고 구장으로 갔다. 반응이 싸하다. “상의가 이상해!, 남자 옷 아니야?”, “길이는 왜 이렇게 길어, 어깨도 길고”, “전혀 신유빈 핏이 아닌데”, “나는 안 입어 봐도 될 거 같아, 그냥 2S로 교환해야겠어.”
‘오! 이런, 이제야 거울을 보니 옷이 제법 커 보인다. 어젯밤에는 예뻐 보이기만 했는데’ 실망한 나의 표정에 다른 회원이 거들었다. “옷 좀 줄이면 괜찮겠는데요, 어깨랑 팔이랑 길이랑 옆쪽도” ‘뭐야! 전부다 잖아.' 그런데, 그 말이 위안이 될 줄이야. 새로 구입하는 대신 생애 처음, 탁구유니폼을 들고 옷 수선집을 찾았다. 오래전부터 쇼핑거리에서 브랜드 옷을 수선해 온 믿을 만한 수선집이었다.
내 몸에 딱 맞는 맞춤형 유니폼이 탄생했다. 나의 항저우 유니폼을 처음 본 회원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다. “삐약이 유니폼이네”, “잘 어울려요”, “언제 다들 맞춰서 입었데요”,“신유빈처럼 치기만 하면 되겠네” 수선집에 들인 시간과 비용이 가져다준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탁구 요정 유니폼이 그렇게 예쁘세요?’ ‘물론이지요, 탁구 선배님 신유빈 선수처럼 예쁘게 치고 싶어요. 혹시 아나요, 유빈 선수의 기운을 받아 나비는 못되더라도 참새처럼 날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