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과 결별한 지 열흘 만에 탁구장에 갔다. 열흘이 별거냐 마는 하루라도 구장에 가지 않으면 “아! 맞다! 그렇지”를 연발하며 리셋되는 난, 특별하기 때문이다. 구장 안은 11월의 싸한 날씨에도 반팔, 반바지에 수건 하나씩 옆에 두고 땀을 닦아 대는 모습이 여느 여름날 못지않았다.
독감에 KO패 당했던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회원들의 안부 인사를 들으며 서브 연습을 시작했다. 자꾸 공과 라켓의 타점이 맞지 않는다. ‘왜 이래? 뭐야! 고작 열흘에 서브 박자도 못 잡는 거였어’ 다른 회원들은 오랜만에 탁구장에 나와도 몇 번 움직이면 어제 왔던 사람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내 머리와 몸은 썸이라도 타는지 아직 서먹서먹하다. 머리가 다가가면 다리는 멀어지고 팔이 가까워지려 하면 머리는 애써 기억 못 하는 척 저만치 지나친다. ‘얘들아! 왜 이러니!’
공과 라켓이 자꾸 엇나가자 서브 연습이 싫어졌다. 평소 같으면 한 바구니씩 넣었을 서브를 공 몇 개 넣다 말고 정리했다. ‘그렇지, 일단 오늘은 감을 다시 잡아야 하니까. 서브 연습은 나중에 혼자 있을 때 하자.’ 이유 있는 핑계를 대며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구장 유일한 초보, 오름부 회원들이 게임 중이다. 한 명은 길고 빠르게 꽂히는 서브를 하고, 한 명은 가뿐히 그 공을 받아넘긴다. 공이 살짝 뜨게 넘어올 때면 자세를 잡으며 힘껏 스매싱했다. 이 정도 파워면 3구에서 게임이 끝나야 초보 오름부다. 그런데 그 공을 받아넘긴다. ‘어라, 공을 받았네’ 그 공을 다시 공격한다. ‘이번에는 끝나겠지’,‘뭐야, 또 받네’ 이리저리 다리를 움직이며 오른쪽, 왼쪽으로 오는 공을 잘도 받는다. 그녀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왜 이렇게 다들 잘 받는데?” 같은 오름부지만 나보다 두서너 계단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연신 ‘오름부 최고’를 외쳤다.
이번에는 나와 한 명씩 실전 게임을 시작했다. 심판 자리에 앉은 동생은 쉬지 않고 말을 해댄다. “힘은 좋아. 괜찮아. 공칠 때 팔만 치지 말고 몸도 같이 들어가요. 그럼 공 들어가요.”, “얼른 가운데로 와. 공이 와요. 치고 무조건 돌아와요. 생각하지 말고. 구석에 있으면 안 돼”,“공치고 바로 라켓 제자리 돌아와. 왜 치고 멈춰 있어요. 느려. 치고 라켓 준비요.”, “가운데 비었어. 공은 다시 와요. 끝나지 않았어. 집중해, 공 봐!”
‘나도 미치게 돌아가고 싶다고!’ 난 게임을 하는 게 아니고 코치 두 명과 연습하는 거였다. 독감으로 감을 잃은 동료를 위한 선물! 그녀들의 합작 실전 트레이닝이었다. 한 명은 상대가 되어주고 한 명은 순간순간 내 동작을 계속 짚어 주고.
“네 서브가 보여. 너무 잘 보여서 내가 바로 공격할 수밖에 없어. 어떻게 좀 해 봐”
“몰라! 어떻게 해, 나 서브 이것뿐인데”
“빠르게 넣어봐. 안 되면 낮게라도 넣어. 너무 높아. 공격당하기 딱 좋다고. 자세를 낮춰!”
오랜만에 구장에 나온 나를 가운데 두고 그녀들의 하드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늘, 내 공을 보고 내 공을 받는 오름부 동지들. 나보다도 내 공을 더 잘 분석하는 그녀들이었다.
구장 시계는 벌써 밤 10시를 가리켰다. 눈이 감기는 마법이 시작되는 시간. 요 며칠 약 기운 탓인지 그녀들의 외침 속에서도 눈이 감긴다. 작은 눈을 힘 주며 크게 떠본다. 독감 때문에 갑자기 밀착 개인 코치가 두 명이나 생겼다. 독감을 미워해야 할지, 감사해야 할지. 줄줄이 연말 대회 일정이 잡혔다. 오름부 단체전에서 내 몫을 다 할 수 있기를.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실력보다도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는 멘탈이란 걸 알기에 마음을 다잡아 본다.